월급에서 손해배상금을 미리 떼도 될까 — 세금·보험료 공제와 무엇이 다른가
결론부터: “떼도 되는 돈”은 법이 정해놓은 것뿐이다
급여명세서를 보면 세금(소득세·지방소득세), 4대 보험료(국민연금·건강보험·고용보험·산재보험료 중 근로자 부담분) 같은 항목이 이미 빠진 채로 실수령액이 찍혀 나온다. 이런 공제는 익숙해서 당연하게 느껴지지만, 사실은 근로기준법이 정한 예외 요건을 충족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다.
근로기준법 제43조제1항은 이렇게 정한다.
“임금은 통화(通貨)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는 임금의 일부를 공제하거나 통화 이외의 것으로 지급할 수 있다.”
본문은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는 의무이고, 단서는 그 의무의 예외를 딱 두 가지 근거로만 열어둔다.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거나,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다. 조문 어디에도 ‘손해배상’, ‘근로자 동의’, ‘근로계약’, ‘취업규칙’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소득세법이 원천징수를 정하고, 국민연금법·국민건강보험법·고용보험법·산업재해보상보험법이 보험료 원천공제를 정하니까 이런 항목은 “법령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에 해당해서 공제가 가능한 것이다. 반면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특정 공제 항목(예: 조합비 일괄공제 등)을 합의해두면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로 공제 근거가 생긴다.
그럼 손해배상금은 왜 다른가
근로자가 업무 중 실수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고 해서, 회사가 다음 달 월급에서 그 손해배상금을 바로 빼고 지급해도 되는 걸까. 제43조제1항의 문언 구조로 보면 답은 명확하다. 손해배상채권은 법령도 단체협약도 아니다. 단서가 요구하는 두 가지 근거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으므로, 본문의 원칙 — 전액을 통화로 직접 지급 — 이 그대로 적용된다.
즉 회사가 “네가 끼친 손해니까 월급에서 알아서 제하겠다”고 일방적으로 공제하면, 이는 법령·단체협약에 근거가 없는 공제이므로 제43조제1항 본문 위반의 문제가 생긴다.
근로자가 “빼도 좋다”고 동의하면 되는가 — 판례가 다루는 영역
여기서 흔히 헷갈리는 지점이 있다. “근로자 본인이 동의했으니 괜찮은 것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런데 이 ‘동의에 의한 공제’는 근로기준법 제43조제1항의 단서가 다루는 문제가 아니다. 단서는 법령·단체협약이라는 객관적 근거만을 규정할 뿐이고, 동의로 상계할 수 있는지는 대법원 판례가 별도로 형성해온 법리다.
대법원 2001. 10. 23. 선고 2001다25184 판결은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이 판결은 임금 전액지급 원칙의 취지를 이렇게 설명한다.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공제하는 것을 금지하여 근로자에게 임금 전액을 확실하게 지급받게 함으로써 근로자의 경제생활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그 보호를 도모하려는 데 있으므로,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근로자의 임금채권을 상계하는 것은 금지된다.”
다만 이 판결은 동의가 있다는 사실만으로 공제가 정당화되는 것은 아니라고 본다.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근로자의 임금채권에 대하여 상계하는 경우에 그 동의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터잡아 이루어진 것이라고 인정할 만한 합리적인 이유가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때에는” 전액지급 원칙 위반이 아니라고 보되, “그 동의가 근로자의 자유로운 의사에 기한 것이라는 판단은 엄격하고 신중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주의할 점: 이 판결은 원심이 근로자의 동의 여부와 그 동의가 유효한지를 심리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낸(파기환송) 판결이다. “동의만 있으면 공제가 적법하다”고 확정한 판결이 아니라, 동의의 진정성을 엄격히 따져야 한다는 심리 기준을 제시한 것에 불과하다. 실무에서 회사가 손해배상금 공제 동의서를 받아뒀다고 해서 그 자체로 법적 안전판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초과 지급된 임금의 정산 — 또 다른 별개의 예외
대법원 2010. 5. 20. 선고 2007다90760 판결(전원합의체)은 상계가 허용되는 또 다른 좁은 예외를 보여준다. 이 판결의 다수의견은 임금·퇴직금도 상계 금지 원칙이 적용됨을 재확인하면서, 예외적으로 상계가 허용되는 경우를 이렇게 한정했다.
“계산의 착오 등으로 임금을 초과 지급한 경우에, 근로자가 퇴직 후 그 재직 중 받지 못한 임금이나 퇴직금을 청구하거나, 근로자가 비록 재직 중에 임금을 청구하더라도 위 초과 지급한 시기와 상계권 행사의 시기가 임금의 정산, 조정의 실질을 잃지 않을 만큼 근접하여 있고 나아가 사용자가 상계의 금액과 방법을 미리 예고하는 등으로 근로자의 경제생활의 안정을 해할 염려가 없는 때”
이 예외는 계산 착오 등으로 인한 초과 지급분의 정산에 한정된 것이다. 손해배상채권처럼 근로자의 과실이나 잘못으로 생긴 별개의 채권을 이 법리로 끌어와 상계 근거로 삼을 수는 없다. 판례가 다룬 사안도 “퇴직금 분할 약정이 무효여서 생긴 부당이득반환채권”과 퇴직금채권의 상계 문제였고, 이때조차 민사집행법 제246조제1항제5호(퇴직금 등 급여채권의 2분의 1은 압류금지채권)와 민법 제497조(압류금지채권의 채무자는 상계로 대항하지 못한다)를 근거로 퇴직금채권의 2분의 1을 초과하는 부분에 대해서만 상계를 허용했다. 이 부분은 다수의견이며, 별개 및 반대의견이 함께 실려 있으니 두 입장을 섞어 이해하면 안 된다.
전차금 상계는 아예 금지 — 제21조
근로기준법은 제43조와 별개로 제21조에서 특정 유형의 상계를 원천 금지한다.
“사용자는 전차금(前借金)이나 그 밖에 근로할 것을 조건으로 하는 전대(前貸)채권과 임금을 상계하지 못한다.”
이 조문에는 항이나 단서가 없다. 근로할 것을 조건으로 미리 빌려준 돈과 임금을 상계하는 것은 법령이나 단체협약, 근로자 동의 여부와 무관하게 금지된다.
지급 시기 원칙도 함께 알아두기
제43조제2항은 공제 문제와는 별개로 지급 “시기”를 정한다.
“임금은 매월 1회 이상 일정한 날짜를 정하여 지급하여야 한다. 다만, 임시로 지급하는 임금, 수당, 그 밖에 이에 준하는 것 또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금에 대하여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 항의 단서가 말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임금”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시행령 확인이 필요한 사항이며, 이 글이 다루는 범위 밖이다.
정리
| 구분 | 근거 | 비고 |
|---|---|---|
| 세금·4대 보험료 공제 | 법령(소득세법·사회보험 관계 법령 등)에 특별한 규정 | 제43조제1항 단서의 “법령” 요건 충족 |
| 단체협약으로 정한 공제(조합비 등) |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 | 제43조제1항 단서의 “단체협약” 요건 충족 |
| 손해배상금 일방 공제 | 법령·단체협약 근거 없음 | 원칙적으로 제43조제1항 본문 위반 소지 |
| 동의에 의한 임금채권 상계 | 판례 법리(2001다25184) | “자유로운 의사”임을 엄격·신중하게 판단해야 함, 동의만으로 자동 적법은 아님 |
| 계산 착오로 인한 초과 지급 정산 | 판례 법리(2007다90760) | 시기 근접성·예고 등 요건 충족 시에만, 손해배상채권에는 적용 안 됨 |
| 전차금·전대채권과의 상계 | 제21조 | 항상 금지 |
핵심은 하나다. 근로기준법 제43조제1항이 정한 임금 전액지급 원칙의 예외는 “법령 또는 단체협약에 특별한 규정이 있는 경우”뿐이며, 손해배상금처럼 조문이 들지 않은 근거로 회사가 일방적으로 공제하는 것은 이 원칙에 저촉될 소지가 크다. 동의에 의한 상계나 초과 지급 정산을 위한 상계는 판례가 별도로 인정해온 좁은 예외 영역이고, 그 인정 요건 또한 “엄격하고 신중하게” 판단하도록 대법원이 못박아 두었다.
참고 법령·판례
- 근로기준법 제43조(임금 지급) 제1항, 제2항
- 근로기준법 제21조(전차금 상계의 금지)
- 대법원 2001. 10. 23. 선고 2001다25184 판결
- 대법원 2010. 5. 20. 선고 2007다90760 판결
- 민사집행법 제246조제1항제5호 (2007다90760 판결 참조조문)
- 민법 제492조, 제497조 (판결 참조조문)
관련 판례
근로기준법 제42조 제1항 본문에서 "임금은 통화로 직접 근로자에게 그 전액을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규정하여 이른바 임금 전액지급의 원칙을 선언한 취지는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임금을 공제하는 것을 금지하여 근로자에게 임금 전액을 확실하게 지급 받게 함으로써 근로자의 경제생활을 위협하는 일이 없도록 그 보호를 도모하려는 데 있으므로, 사용자가 근로자에 대하여 가지는 채권을 가지고 일방적으로 근로자의 임금채권을 상계하는 것은 금지된다고 할 것이지만, 사용자가 근로자의 동의를 얻어 근로자의 임금채권에 대하여 상계하는 경우에 그 동의가 근
[1] [다수의견] 사용자와 근로자가 매월 지급하는 월급이나 매일 지급하는 일당과 함께 퇴직금으로 일정한 금원을 미리 지급하기로 약정(이하 ‘퇴직금 분할 약정’이라 한다)하였다면, 그 약정은 구 근로기준법(2005. 1. 27. 법률 제7379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34조 제3항 전문 소정의 퇴직금 중간정산으로 인정되는 경우가 아닌 한 최종 퇴직 시 발생하는 퇴직금청구권을 근로자가 사전에 포기하는 것으로서 강행법규인 같은 법 제34조에 위배되어 무효이고, 그 결과 퇴직금 분할 약정에 따라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퇴직금 명목의 금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