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이 처음부터 무효가 되려면 어떤 잘못이 있어야 하나: 행정기본법 제15조와 '중대·명백' 기준
핵심 답변 위법한 처분도 원칙적으로는 효력이 있는 것으로 통용됩니다(행정기본법 제15조 본문).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무효는 예외입니다(같은 조 단서). 그런데 제15조는 어떤 처분이 무효인지 그 요건을 정하지 않습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무효가 되려면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대법원 1995. 7. 11. 선고 94누4615 판결). 하자가 중대하더라도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으면 당연무효가 아닙니다.
(2026년 10월 22일 기준 현행 법령에 따라 작성)
1. 행정기본법 제15조: 본문은 ‘통용’, 단서는 ‘무효’
행정기본법 제15조는 항이나 호 없이 본문과 단서로만 된 조문입니다.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15조(처분의 효력) 처분은 권한이 있는 기관이 취소 또는 철회하거나 기간의 경과 등으로 소멸되기 전까지는 유효한 것으로 통용된다. 다만, 무효인 처분은 처음부터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아니한다.
본문과 단서는 서로 다른 두 가지 처분을 다룹니다.
| 구분 | 근거 | 효력 | 효력이 사라지는 때 |
|---|---|---|---|
| 무효가 아닌 처분(위법한 처분 포함) | 제15조 본문 | 유효한 것으로 통용 | 권한이 있는 기관이 취소·철회하거나 기간의 경과 등으로 소멸될 때 |
| 무효인 처분 | 제15조 단서 | 처음부터 효력이 발생하지 않음 | 애초에 효력이 생기지 않음 |
꼭 구분해야 할 세 가지
- ‘통용’은 ‘적법’과 다릅니다. 본문은 “유효한 것으로 통용된다”고 할 뿐, 처분이 적법하다고 인정하는 규정이 아닙니다. 위법한 처분도 소멸되기 전까지는 효력 있는 것으로 다뤄진다는 뜻입니다.
- 통용을 끝낼 수 있는 주체와 사유는 정해져 있습니다. 문언상 통용이 끝나는 것은 ‘권한이 있는 기관’이 취소·철회하거나 ‘기간의 경과 등’으로 소멸될 때입니다. 처분 상대방이 스스로 판단해서, 또는 아무 기관이나 효력을 부정할 수 있다는 규정이 아닙니다. 취소·철회의 효력이 언제부터 미치는지는 제15조가 정하지 않습니다.
- 무효인 처분은 본문의 통용 대상이 아닙니다. 단서에 따라 무효인 처분은 처음부터 효력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취소될 때까지 통용되는 처분과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2. 무효의 요건: 제15조에는 없고 판례가 기준을 정했다
제15조 단서는 무효인 처분의 효과(처음부터 효력 없음)만 정하고, 어떤 하자가 있어야 무효인지는 정하지 않습니다. 그 기준은 대법원 판례에서 찾아야 합니다.
아래에서 소개하는 두 판결의 참조조문에 행정기본법 제15조는 들어 있지 않습니다. 94누4615 판결은 구 건설업법, 행정소송법 제1조·제19조 등을 들고, 2007두6342 판결은 행정소송법 제35조 등을 듭니다. 따라서 두 판결은 ‘제15조를 해석한 판례’가 아니라, 처분의 당연무효와 무효확인소송에 관해 대법원이 제시한 법리로 이해해야 합니다.
대법원 다수의견: 중대하고 명백해야 한다
대법원 1995. 7. 11. 선고 94누4615 판결의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습니다.
하자 있는 행정처분이 당연무효가 되기 위하여는 그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으로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하며 하자가 중대하고 명백한 것인지 여부를 판별함에 있어서는 그 법규의 목적, 의미, 기능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구체적 사안 자체의 특수성에 관하여도 합리적으로 고찰함을 요한다.
정리하면 무효가 되려면 다음 요건을 모두 갖춰야 합니다.
- 중대성: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하자일 것
- 명백성: 그 하자가 객관적으로 명백할 것
- 판단 방법: 법규의 목적·의미·기능을 목적론적으로 살피고, 구체적 사안의 특수성도 합리적으로 고려할 것
이 판결의 반대의견은 이 기준을 “종래의 판례나 통설인 중대명백설”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대의견: 명백성은 보충적 요건이다
같은 판결의 반대의견은 다르게 봤습니다.
명백성은 행정처분의 법적 안정성 확보를 통하여 행정의 원활한 수행을 도모하는 한편 그 행정처분을 유효한 것으로 믿은 제3자나 공공의 신뢰를 보호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보충적으로 요구되는 것으로서, 그와 같은 필요가 없거나 하자가 워낙 중대하여 (…) 처분 상대방의 권익을 구제하고 위법한 결과를 시정할 필요가 훨씬 더 큰 경우라면 그 하자가 명백하지 않더라도 (…) 당연무효라고 보아야 한다.
| 다수의견 | 반대의견 | |
|---|---|---|
| 중대성 | 필요 | 필요 |
| 명백성 | 언제나 필요(객관적으로 명백해야 함) | 제3자·공공의 신뢰를 보호할 필요가 있을 때 보충적으로 요구 |
| 결론 | 중대하지만 명백하지 않으면 당연무효가 아님 | 하자가 매우 중대하면 명백하지 않아도 당연무효일 수 있음 |
판결의 결론을 이끈 것은 다수의견입니다. “명백하지 않아도 무효가 될 수 있다”는 설명은 반대의견의 견해이므로, 대법원 판례의 기준으로 소개하면 안 됩니다.
3. 사례로 보는 기준: 중대하지만 명백하지 않은 경우
94누4615 판결 사안을 일반화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법률상 국가 장관의 권한인 영업정지 처분권한이 광역자치단체장에게 위임되었습니다.
- 광역자치단체장은 이 권한을 규칙이 아니라 조례로 기초자치단체장(구청장)에게 재위임했습니다.
- 대법원은 이 사무가 기관위임사무이므로 조례로 재위임할 수 없고, 위임기관 장의 승인을 얻은 뒤 지방자치단체장이 제정한 규칙에 따라서만 재위임할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래서 재위임 부분 조례는 무효라고 판단했습니다.
하자가 중대한지에 대해서, 다수의견은 이 처분이 “결과적으로 적법한 위임 없이 권한 없는 자에 의하여 행하여진 것과 마찬가지가 되어 그 하자가 중대하다”고 인정했습니다.
하자가 명백한지에 대해서는 부정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 지방자치단체 사무에 관한 조례와 규칙 중에서는 조례가 더 상위규범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 헌법 제107조 제2항의 “규칙”에 조례와 규칙이 모두 포함되는 등 ‘규칙’의 개념이 경우에 따라 다르게 해석됩니다.
- 이런 점에 비추어 위임 과정의 하자가 객관적으로 명백하다고 할 수 없다고 봤습니다.
결론: 하자가 “중대할 뿐 명백한 것은 아니므로 당연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원심(서울고등법원)은 이 처분을 당연무효로 봤지만,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환송했습니다.
이 사례에서 얻을 시사점: ‘권한 없는 자가 한 처분이면 곧 무효’라고 일반화할 수 없습니다. 권한 하자가 중대하다고 인정되더라도, 그 하자가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으면 다수의견 기준으로는 당연무효가 아닙니다.
4. 사례로 보는 기준: 중대하고 명백하다고 본 경우
대법원 2008. 3. 20. 선고 2007두6342 판결은 다른 방향의 사례입니다.
- 개발사업 시행자가 사업지구 전체의 예상 하수량에 대해 이미 하수도원인자부담금을 냈습니다.
- 그 사업지구 안의 토지를 사서 건물을 신축한 사람에게 행정청이 다시 원인자부담금을 부과했습니다.
- 대법원은 타행위자인 사업시행자가 공공하수도 공사비용을 이미 부담한 부분에는 별도로 원인자부담금을 부과할 수 없다는 법리를 확인했습니다.
- 원심은 이 처분이 “하수도원인자부담금 납부의무를 지지 않는 자에 대하여 그 이행을 명한 것으로서 그 하자가 중대할 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명백하여 당연무효”라고 판단했고, 대법원은 이 판단을 정당하다고 보아 상고를 기각했습니다.
두 사례를 비교하면, 결론을 가른 것은 결국 명백성입니다.
| 사안 유형 | 중대성 | 명백성 | 결론 |
|---|---|---|---|
| 무효인 조례에 근거한 재위임으로 처분(94누4615) | 인정 | 부정 | 당연무효 아님(원심 파기·환송) |
| 납부의무 없는 자에게 부담금 이행을 명함(2007두6342) | 인정 | 인정 | 당연무효(원심 유지) |
5. 무효를 다투는 방법: 무효등 확인소송과 ‘법률상 이익’
누가 제기할 수 있나
행정소송법 제35조의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제35조(무효등 확인소송의 원고적격) 무효등 확인소송은 처분등의 효력 유무 또는 존재 여부의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다.
무효확인소송은 누구나 제기할 수 있는 소송이 아닙니다. 2007두6342 판결에 따르면 여기서 ‘법률상 이익’은 당해 처분의 근거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을 말합니다. 간접적이거나 사실적·경제적 이해관계를 가지는 데 그치는 경우는 해당하지 않습니다.
다른 소송이 가능해도 무효확인을 구할 수 있다(보충성 불요)
종래 대법원은 처분의 무효를 전제로 한 이행소송(예를 들어 낸 돈을 돌려달라는 부당이득반환청구)이 가능하면 무효확인소송은 소의 이익이 없다고 봤습니다. 이른바 ‘무효확인소송의 보충성’입니다.
2007두6342 판결은 이 입장을 바꿨습니다.
행정처분의 근거 법률에 의하여 보호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이 있는 경우에는 행정소송법 제35조에 규정된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다고 보아야 하고, 이와 별도로 무효확인소송의 보충성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므로 행정처분의 무효를 전제로 한 이행소송 등과 같은 직접적인 구제수단이 있는지 여부를 따질 필요가 없다.
판결이 든 근거는 다음과 같습니다.
- 행정소송은 민사소송과 목적·취지·기능이 다릅니다.
- 행정소송법 제4조는 무효확인소송을 항고소송의 하나로 규정합니다.
- 같은 법 제38조 제1항은 취소판결의 기속력과 재처분 의무에 관한 제30조를 무효확인소송에도 준용합니다. 그래서 무효확인판결만으로도 실효성을 확보할 수 있습니다.
- 우리 행정소송법에는 보충성을 요구하는 명문 규정이 없습니다.
이 판결로 이와 다른 취지의 종전 대법원판결들은 그 범위에서 변경되었습니다. 이 판결은 관여 법관의 일치된 의견으로 선고되었고, 그 결론을 뒷받침하는 보충의견이 있습니다.
법령 시행 상황(2026년 10월 22일 기준)
- 행정소송법 현행본은 법률 제21615호(2026. 5. 12. 공포·시행)입니다. 이 개정이 고친 조문은 제43조이고, 제35조의 문언은 위와 같습니다.
- 제9조·제10조를 고치는 법률 제21461호는 2028년 3월 1일 시행 예정이어서 기준일 현재 시행 전입니다. 부칙에는 시행 당시 법원에 계속 중인 사건의 관할은 종전 규정에 따른다는 경과조치가 있습니다. 이 개정으로 제35조 문언은 바뀌지 않습니다.
- 행정기본법 현행본은 법률 제20824호(2025. 3. 18. 일부개정, 현행본 시행일 2026. 3. 19.)입니다. 이 개정이 고친 조문은 제28조·제36조이고 제15조는 고치지 않았습니다. 제15조 문언을 만든 개정이 무엇인지는 이 글이 참고한 자료로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부칙은 시행일만 정합니다. 공포한 날부터 시행하되, 제36조제5항 개정규정은 공포 후 6개월, 제28조제3항 개정규정은 공포 후 1년이 지난 날부터 시행합니다.
6. 자주 묻는 질문
Q1. 처분에 위법한 점이 있으면 처음부터 효력이 없나요? 아닙니다. 행정기본법 제15조 본문에 따라 처분은 권한이 있는 기관이 취소·철회하거나 기간의 경과 등으로 소멸되기 전까지 유효한 것으로 통용됩니다.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것은 무효인 처분뿐입니다(같은 조 단서).
Q2. 어떤 하자가 있어야 무효인가요? 대법원 다수의견에 따르면, 하자가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중대한 것이면서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합니다(94누4615). 이를 판단할 때는 법규의 목적·의미·기능과 구체적 사안의 특수성을 함께 고려합니다.
Q3. 하자가 아주 중대하면 명백하지 않아도 무효가 되나요? 그렇게 본 것은 94누4615 판결의 반대의견입니다. 다수의견은 명백성을 요구했고, 실제로 중대하지만 명백하지 않은 하자를 당연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Q4. 권한 없는 기관이 한 처분은 무효인가요? 그렇게 단정할 수 없습니다. 94누4615 판결에서 대법원은 무효인 조례에 따른 재위임으로 한 처분의 하자가 중대하다고 하면서도, 객관적으로 명백하지 않다는 이유로 당연무효가 아니라고 봤습니다.
Q5. 이미 돈을 냈다면 무효확인소송 대신 돈을 돌려달라는 소송만 할 수 있나요? 2007두6342 판결 이후에는 부당이득반환청구 같은 이행소송이 가능한지와 관계없이, 근거 법률이 보호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이 있으면 무효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인정됩니다.
Q6. 행정기본법 제15조를 직접 해석한 대법원 판례인가요? 아닙니다. 이 글에서 소개한 두 판결의 참조조문에는 행정기본법 제15조가 없습니다. 무효 요건에 관한 판례 법리를 제15조 단서와 함께 읽는 것일 뿐입니다.
참고 법령 및 판례
법령(2026년 10월 22일 기준 현행)
- 행정기본법 제15조(처분의 효력): 법률 제20824호, 2025. 3. 18. 일부개정, 시행 2026. 3. 19.
- 행정기본법 부칙 <제20824호, 2025. 3. 18.>
- 행정소송법 제35조(무효등 확인소송의 원고적격): 법률 제21615호, 2026. 5. 12. 일부개정, 시행 2026. 5. 12.
- 행정소송법 부칙 <제21615호, 2026. 5. 12.>
- 행정소송법 부칙 <제21461호, 2026. 3. 17.> 제1조·제2조: 시행 2028. 3. 1.로 기준일 현재 미시행
판결이 언급한 조문(판결 이유에서 인용)
- 행정소송법 제4조, 제30조, 제38조 제1항(2007두6342)
- 헌법 제107조 제2항(94누4615)
판례
- 대법원 1995. 7. 11. 선고 94누4615 판결(건설업영업정지처분무효확인)
- 대법원 2008. 3. 20. 선고 2007두6342 판결(하수도원인자부담금부과처분취소)
관련 판례
가. 구 건설업법(1994.1.7. 법률 제472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7조 제1항, 같은법시행령 제53조 제1항 제1호에 의하면 건설부장관의 권한에 속하는 같은 법 제50조 제2항 제3호 소정의 영업정지 등 처분권한은 서울특별시장·직할시장 또는 도지사에게 위임되었을 뿐 시·도지사가 이를 구청장·시장·군수에게 재위임할 수 있는 근거규정은 없으나, 정부조직법 제5조 제1항과 이에 기한 행정권한의위임및위탁에관한규정 제4조에 재위임에 관한 일반적인 근거규정이 있으므로 시·도지사는 그 재위임에 관한 일반적인 규정에 따라 위임받은 위
[1] 행정소송은 행정청의 위법한 처분 등을 취소·변경하거나 그 효력 유무 또는 존재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국민의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구제하고 공법상의 권리관계 또는 법 적용에 관한 다툼을 적정하게 해결함을 목적으로 하므로, 대등한 주체 사이의 사법상 생활관계에 관한 분쟁을 심판대상으로 하는 민사소송과는 목적, 취지 및 기능 등을 달리한다. 또한 행정소송법 제4조에서는 무효확인소송을 항고소송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있고, 행정소송법 제38조 제1항에서는 처분 등을 취소하는 확정판결의 기속력 및 행정청의 재처분 의무에 관한 행정소송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