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분이 처음부터 효력이 없으려면 어떤 잘못이 있어야 하나
처분은 일단 유효하다는 원칙
행정기본법 제15조 본문은 명확하다. “처분은 권한이 있는 기관이 취소 또는 철회하거나 기간의 경과 등으로 소멸되기 전까지는 유효한 것으로 통용된다.”
이것이 행정법의 기본 원칙이다. 처분이 법에 어긋나더라도, 취소되거나 철회되기 전까지는 세상에 효력을 가지고 통용된다. 같은 조문의 “통용”이라는 표현은 ‘인정되거나 인정받는 상태’를 뜻한다. 즉 처분은 적법성 여부와 관계없이 일단 존재하고 작동한다는 뜻이다.
예외: 무효인 처분
그런데 예외가 있다. 같은 조문의 단서는 이렇게 규정한다. “다만, 무효인 처분은 처음부터 그 효력이 발생하지 아니한다.”
무효인 처분은 태생적으로 효력이 없다.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다. 그러면 어떤 잘못이 있으면 처분이 무효가 될까.
무효가 되는 잘못: 대법원의 기준
행정기본법 제15조 단서는 무효의 요건을 따로 정하지 않는다. 무효의 기준은 판례에서 나온다.
대법원 1995. 7. 11. 선고 94누4615 판결이 제시한 기준에 따르면, 하자 있는 행정처분이 처음부터 효력이 없는 것(당연무효)으로 인정되려면 그 하자가 다음 세 가지를 갖춰야 한다.
첫째, 법규의 중요한 부분을 위반한 것이어야 한다. 절차나 양식의 하자만으로는 부족하다. 행정처분의 권한 자체가 없거나,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령이 무효인 것처럼 처분의 기초를 흔드는 위반이어야 한다.
둘째, 그 위반이 중대한 것이어야 한다. 가볍거나 부수적인 위반이 아니라, 행정처분으로서의 정당성을 완전히 잃게 하는 수준의 위반이어야 한다.
셋째, 그 위반이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이어야 한다. 누가 봐도, 어떤 해석의 여지가 거의 없을 정도로 명확한 위반이어야 한다.
“명백함”이 무엇인가: 법원의 해석
여기서 “명백하다”는 것이 정확히 무엇을 의미하는지가 실제 판단의 핵심이다.
판결의 다수의견은 이렇게 설명한다. 명백성을 판단할 때는 법규의 목적, 의미, 기능 등을 목적론적으로 고찰함과 동시에 구체적 사안 자체의 특수성에 관하여도 합리적으로 고찰해야 한다. 즉, 단순히 문자적으로 위반이 드러났는지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법규가 왜 있는지, 이 사건에서 그 위반이 얼마나 심각한지를 함께 봐야 한다는 뜻이다.
한편 같은 판결의 반대의견은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명백성이라는 요건이 행정처분의 법적 안정성을 확보하고 그것을 유효하다고 믿은 제3자나 공공의 신뢰를 보호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경우에 보충적으로 요구되는 것이라면, 그런 필요가 없거나 하자가 워낙 중대하여 그런 필요보다 처분 상대방의 권익 구제가 훨씬 더 중요한 경우라면 명백하지 않더라도 당연무효라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권한 없는 자의 처분이 항상 무효는 아니다
실제 판례에서 주의할 점은, “권한 없는 자가 한 처분은 당연히 무효다”라고 단순화할 수 없다는 것이다.
위 판결에서 다루는 사건은 정부 기관의 조례(법규)가 헌법상 권한을 벗어나 무효라는 점이 인정되었음에도 그 조례에 근거한 영업정지처분은 당연무효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왜인가. 그 처분의 하자가 “중대할 뿐 명백한 것은 아니”라고 봤기 때문이다. 판례가 당원의 근거가 된 조례가 무효라는 점 자체는 다수의견도 인정했지만, 그 사실이 객관적으로 명백했는지, 즉 법원의 판결 없이도 누구나 알 수 있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고 본 것이다.
무효를 확인받으려면
처분이 무효라고 해도, 이를 법적으로 확정받으려면 행정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행정소송법 제35조는 “무효등 확인소송은 처분등의 효력 유무 또는 존재 여부의 확인을 구할 법률상 이익이 있는 자가 제기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법률상 이익”은 그 처분의 근거가 되는 법령이 보호하는 직접적이고 구체적인 이익을 의미한다.
무효인 처분도 상대방이 법원의 판단을 받기 전까지는 여전히 통용되는 상태다. 따라서 무효라고 믿는 상대방이 적극적으로 무효확인소송을 제기해야 처음부터 효력이 없었다는 확정을 받을 수 있다.
참고 법령
- 행정기본법 제15조
- 행정소송법 제35조
관련 판례
가. 구 건설업법(1994.1.7. 법률 제4724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57조 제1항, 같은법시행령 제53조 제1항 제1호에 의하면 건설부장관의 권한에 속하는 같은 법 제50조 제2항 제3호 소정의 영업정지 등 처분권한은 서울특별시장·직할시장 또는 도지사에게 위임되었을 뿐 시·도지사가 이를 구청장·시장·군수에게 재위임할 수 있는 근거규정은 없으나, 정부조직법 제5조 제1항과 이에 기한 행정권한의위임및위탁에관한규정 제4조에 재위임에 관한 일반적인 근거규정이 있으므로 시·도지사는 그 재위임에 관한 일반적인 규정에 따라 위임받은 위
[1] 행정소송은 행정청의 위법한 처분 등을 취소·변경하거나 그 효력 유무 또는 존재 여부를 확인함으로써 국민의 권리 또는 이익의 침해를 구제하고 공법상의 권리관계 또는 법 적용에 관한 다툼을 적정하게 해결함을 목적으로 하므로, 대등한 주체 사이의 사법상 생활관계에 관한 분쟁을 심판대상으로 하는 민사소송과는 목적, 취지 및 기능 등을 달리한다. 또한 행정소송법 제4조에서는 무효확인소송을 항고소송의 일종으로 규정하고 있고, 행정소송법 제38조 제1항에서는 처분 등을 취소하는 확정판결의 기속력 및 행정청의 재처분 의무에 관한 행정소송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