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당한 처분, 공익 때문에 기각된다면 —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에서 '사정재결·사정판결'은 어떻게 다른가
처분이 위법하거나 부당하다고 인정되는데도, 그 처분을 취소하면 공익에 더 큰 해가 된다는 이유로 청구가 기각되는 경우가 있다. 이를 행정심판에서는 사정재결, 행정소송에서는 사정판결이라 부른다. 둘 다 “이겨도 기각”되는 결과라는 점은 같지만, 근거 조문·요건 문언·주문에 적는 내용·구제 방법의 성격이 서로 다르다. 이 글은 행정심판법 제44조와 행정소송법 제28조·제38조의 조문만 근거로 두 제도의 차이를 정리한다.
1. 행정심판법상 사정재결 (제44조)
행정심판법 제44조제1항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위원회는 심판청구가 이유가 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이를 인용(認容)하는 것이 공공복리에 크게 위배된다고 인정하면 그 심판청구를 기각하는 재결을 할 수 있다. 이 경우 위원회는 재결의 주문(主文)에서 그 처분 또는 부작위가 위법하거나 부당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핵심은 세 가지다.
- 요건: 심판청구를 인용하는 것이 “공공복리에 크게 위배된다”고 인정되는 경우여야 한다.
- 기각 여부는 재량: 조문은 “기각하는 재결을 할 수 있다”고 적는다. 요건이 갖춰졌다고 해서 반드시 기각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 주문 기재는 의무: 다만 기각을 하기로 했다면, 위원회는 재결 주문에서 “그 처분 또는 부작위가 위법하거나 부당하다는 것을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 이는 “밝혀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다.
제44조제2항은 이 경우 위원회가 청구인에게 상당한 구제방법을 취하거나, 피청구인에게 그렇게 하도록 명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 역시 “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이다.
그리고 제44조제3항은 명문으로 선을 긋는다.
제1항과 제2항은 무효등확인심판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
즉 행정심판법은 사정재결 제도 자체를 무효등확인심판에는 아예 적용하지 않는다고 못박고 있다.
2. 행정소송법상 사정판결 (제28조)
행정소송법 제28조제1항은 다음과 같다.
원고의 청구가 이유있다고 인정하는 경우에도 처분등을 취소하는 것이 현저히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법원은 원고의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 이 경우 법원은 그 판결의 주문에서 그 처분등이 위법함을 명시하여야 한다.
사정재결과 나란히 놓고 보면 차이가 분명해진다.
- 요건 문언이 다르다: 사정재결은 “공공복리에 크게 위배된다”고 하는 반면, 사정판결은 “현저히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아니하다”고 한다. 두 표현을 하나로 합쳐 쓰면 안 된다. 조문이 서로 다른 말을 쓰고 있기 때문이다.
- 기각 여부는 역시 재량: “청구를 기각할 수 있다”로, 사정재결과 마찬가지로 법원의 재량이다.
- 주문 기재 범위가 다르다: 사정재결 주문에는 “위법하거나 부당하다”를 구체적으로 밝혀야 하지만, 사정판결 주문에는 “그 처분등이 위법함”만 명시하면 된다. 사정판결 주문에 ‘부당’이라는 말을 넣을 근거는 조문 어디에도 없다.
제28조제2항은 법원이 사정판결을 할 때 “미리 원고가 그로 인하여 입게 될 손해의 정도와 배상방법 그 밖의 사정을 조사하여야 한다”고 정한다. 이는 “하여야 한다”는 의무 규정으로, 사정재결에서 위원회의 구제방법 지시가 재량(“할 수 있다”)인 것과 대비된다.
제28조제3항은 원고가 피고인 행정청이 속하는 국가 또는 공공단체를 상대로 손해배상, 제해시설의 설치, 그 밖에 적당한 구제방법의 청구를, 해당 취소소송등이 계속된 법원에 병합하여 제기할 수 있다고 정한다. 이 청구 자체는 원고의 선택에 달린 것으로 “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이다.
3. 무효확인에서 배제되는 방식이 서로 다르다
두 법 모두 사정재결·사정판결이 무효확인 사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는 결론은 같지만, 배제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점을 분명히 해 둘 필요가 있다.
- 행정심판법은 제44조제3항에서 “제1항과 제2항은 무효등확인심판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고 명문으로 적용을 배제한다.
- 행정소송법은 이런 명문 배제 조항을 따로 두지 않는다. 대신 제38조제1항이 무효등 확인소송에 준용하는 조문들을 열거하는데, 거기에 제28조가 빠져 있을 뿐이다. 제38조제1항이 준용한다고 정한 조문은 “제9조, 제10조, 제13조 내지 제17조, 제19조, 제22조 내지 제26조, 제29조 내지 제31조 및 제33조”이고, 제28조는 이 목록에 들어 있지 않다.
즉 행정소송법 쪽에는 “적용하지 아니한다”는 문구 자체가 없다. 결과적으로 무효확인소송에 사정판결 조문이 쓰이지 않는 셈이지만, 이는 준용 조문 목록에서 제외된 결과이지, 행정심판법처럼 별도의 배제 조항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둘을 같은 방식이라고 섞어 쓰면 틀린 설명이 된다.
4. 부작위위법확인소송도 마찬가지로 제외된다
행정소송법 제38조제2항은 부작위위법확인소송에 준용하는 조문을 “제9조, 제10조, 제13조 내지 제19조, 제20조, 제25조 내지 제27조, 제29조 내지 제31조, 제33조 및 제34조”로 정한다. 여기에도 제28조는 들어 있지 않다. 따라서 부작위위법확인소송에도 사정판결 조문은 준용되지 않는다.
반면 행정심판법 제44조제3항이 적용을 명문으로 배제한 대상은 무효등확인심판뿐이다. 부작위에 대한 심판청구(의무이행심판 등)에 사정재결 조문을 적용할지는 제44조제3항의 명문 배제 범위 밖에 있다는 점에서, 행정소송법의 부작위위법확인소송 취급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5. 왜 이런 제도가 있는가 — 그리고 조문이 정하지 않은 것
사정재결과 사정판결은 모두, 처분이나 부작위가 위법하거나 부당하더라도 이를 취소·인용하는 것이 공익에 더 큰 손해를 가져올 수 있다는 현실적 고려에서 나온 제도다. 다만 두 조문 모두 ‘공공복리’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어떤 기준으로 판단하는지는 정하지 않았다. 괄호 안에 별도의 정의 규정도 없다. 따라서 “이런 경우라면 당연히 기각된다”거나 “일정 요건만 충족하면 자동으로 기각된다”는 식의 설명은 조문에 근거가 없다. 요건이 인정되더라도 기각 여부는 위원회 또는 법원의 재량에 맡겨져 있을 뿐이다.
6. 정리 — 같은 ‘이겨도 기각’이지만 다른 세 지점
| 구분 | 행정심판법 제44조 (사정재결) | 행정소송법 제28조 (사정판결) |
|---|---|---|
| 공공복리 요건 문언 | 인용이 “공공복리에 크게 위배” | 취소가 “현저히 공공복리에 적합하지 아니” |
| 주문 기재 내용 | “위법하거나 부당하다”는 것 | “위법함”만 |
| 기각 여부 | 재량(“할 수 있다”) | 재량(“할 수 있다”) |
| 주문 기재 의무 | 의무(“밝혀야 한다”) | 의무(“명시하여야 한다”) |
| 구제방법 지시 주체·성격 | 위원회가 “명할 수 있다” (재량) | 법원이 손해 정도 등을 “조사하여야 한다” (의무) + 원고가 구제청구를 병합 제기”할 수 있다” (재량) |
| 무효확인에서 배제 방식 | 제44조제3항이 명문으로 “적용하지 아니한다” | 제38조제1항 준용 조문 목록에 제28조가 빠져 있을 뿐, 별도의 명문 배제 조항은 없음 |
요컨대 부당한(또는 위법한) 처분이라도 공익을 이유로 기각될 수 있다는 점은 행정심판과 행정소송에 공통된 설계이지만, 그 요건 문언·주문에 적는 범위·구제 장치의 성격은 각 법이 서로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구체적인 사건에서 어느 조문이 적용되는지, 그리고 시행 중인 조문이 맞는지는 반드시 해당 시점의 현행 법령을 확인해야 한다.
참고 법령
- 행정심판법 제44조(사정재결) 제1항, 제2항, 제3항
- 행정소송법 제28조(사정판결) 제1항, 제2항, 제3항
- 행정소송법 제38조(준용규정) 제1항, 제2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