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 "여럿이 들었다는 사실만으로는 상관모욕 아니다"…1999년 판례 변경
군형법 ‘공연한 방법’은 형법 ‘공연히’와 다른 개념…원심 파기하고 사건 다른 법원으로 이송
여러 사람이 듣는 자리에서 상관을 모욕했다는 사실만으로는 군형법이 정한 ‘공연한 방법’에 의한 상관모욕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지난달 22일 상관모욕 혐의로 기소된 A씨에 대한 상고심에서 유죄로 판단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다른 법원으로 이송했다.
A씨는 2019년 10월경 해군 소속 함정이 기지로 입항하던 중 상관에게 여러 차례 의견을 제시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자 “여기 지휘관 엉망이다. 권고도 듣지 않는다”고 말한 혐의로 기소됐다. 헤드셋을 벗어 던진 행위도 함께 기소된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현장에서는 다른 군인 3명이 A씨의 발언을 듣거나 목격한 것으로 보도됐다.
1심은 A씨에게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고, 2심은 항소를 기각했다.
쟁점은 군형법 제64조 제2항이 정한 ‘공연한 방법’의 범위였다. 이 조항은 문서, 도화 또는 우상을 공시하거나 연설 또는 그 밖의 공연한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사람을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에 처하도록 정하고 있다.
종전 판례는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에서 상관을 모욕하면 이 조항의 죄가 성립하고, 그 공연성이 문서·도화·우상의 공시나 연설에 상응할 정도일 필요는 없다고 봤다. 1999년에 나온 판단이다.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대법원은 “군형법 제64조 제2항에서 말하는 ‘공연한 방법’이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공개적으로 자기의 주의나 주장 또는 의견을 분명히 알리는 수단이나 방식을 가리키는 것임이 문언상 명백하다”고 판단했다.
이어 “‘공연한 방법’은 모욕의 수단이나 방식이 그 자체로 공연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구성요건으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공연히’와는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문언의 차이는 같은 조문 안에서 확인된다. 군형법 제64조 제2항은 ‘공연한 방법’이라고 쓰는 반면, 같은 조 제3항과 제4항은 공연히 사실 또는 거짓 사실을 적시해 상관의 명예를 훼손한 경우라고 써 표현을 달리하고 있다.
법정형의 균형도 논거가 됐다. 군형법 제64조 제2항은 벌금형 없이 3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만 정하고 있는 반면, 형법 제311조 모욕죄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하고 있다.
대법원은 “예시된 방법에 상응하는 정도의 공연한 방법으로 이루어진 상관에 대한 모욕행위만을 위 조항의 처벌범위로 보는 것이 위와 같은 불균형을 해소하고, 나아가 징역형만으로 규정된 위 조항에 대해 형벌과 죄질·책임 사이에 균형을 도모하는 조화로운 해석”이라고 밝혔다.
종전 판례가 ‘공연한 방법’의 의미를 피고인에게 불리한 방향으로 해석한 것으로서 죄형법정주의의 내용인 확장해석금지 원칙에 어긋난다는 점도 파기 논거로 전해졌다.
공개된 선고 자료를 기준으로 이번 판결에는 다수의견 외에 별개의견 5인과 다수의견에 대한 보충의견 2인이 확인된다.
다만 상관을 그 면전에서 모욕한 경우는 군형법 제64조 제1항이 따로 정하고 있고, 법정형은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다. 이번 판단은 제2항의 ‘공연한 방법’에 관한 것이다.
군인이 아닌 사람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법리도 아니다. 군형법은 군인 등에게 적용되고, 민간에서 여럿이 있는 자리에서 모욕적인 말을 한 경우는 형법 제311조의 ‘공연히’에 해당하는지가 문제 된다. 이번 판례 변경으로 형법상 공연성 기준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대법원이 종전 판례를 변경하면 아직 확정되지 않은 사건은 바뀐 기준에 따라 다시 판단된다. 이 사건에서 원심이 파기되고 사건이 다른 법원으로 이송된 것이 그 예다.
이번 판결로 무죄가 확정된 것은 아니다. 대법원은 A씨의 행위가 조항에 예시된 방법에 상응하는 정도의 공연한 방법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원심을 파기했고, 사건을 넘겨받은 법원에서 다시 심리가 이뤄진다.
참고 법령
- 군형법 제64조 제1항(상관을 그 면전에서 모욕한 죄)
- 군형법 제64조 제2항(문서·도화·우상의 공시, 연설 또는 그 밖의 공연한 방법에 의한 상관모욕죄)
- 군형법 제64조 제3항(공연히 사실을 적시한 상관 명예훼손죄)
- 군형법 제64조 제4항(공연히 거짓 사실을 적시한 상관 명예훼손죄)
- 형법 제311조(모욕)
관련 판례
판시사항: '문서, 도화 또는 우상을 공시하거나 연설하는 것'에 상응하는 정도가 아닌 방법으로 상관을 모욕한 행위가 군형법 제64조제2항 상관모욕죄에 해당할 수 있는지 여부(소극). 다수의견: "군형법 제64조 제2항에서 말하는 '공연한 방법'이란 불특정 또는 다수인에게 공개적으로 자기의 주의나 주장 또는 의견을 분명히 알리는 수단이나 방식을 가리키는 것임이 문언상 명백하다", "'공연한 방법'은 모욕의 수단이나 방식이 그 자체로 공연성을 갖출 것을 요구하는 구성요건으로, 불특정 또는 다수인이 인식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하는 '공연히'와는 명확히 구별되는 개념이다." 변경 대상은 대법원 1999. 11. 12. 선고 99도3801 판결 등이고 결론은 파기이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