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춤 표지판 앞에서 속도만 줄이고 지나가도 될까? 서행과 일시정지는 다른 의무다
결론부터
“멈춤 표지판”이 도로교통법상 일시정지를 요구하는 안전표지라면, 속도만 살짝 줄이고 지나가는 것은 법이 요구하는 행위를 한 것이 아니다. 도로교통법은 서행과 일시정지를 서로 다른 개념으로 정의하고, 제31조에서 이 둘을 요구하는 장소를 구분해 놓았다. 속도를 줄이는 것은 ‘서행’의 모습에 가깝고, ‘일시정지’는 바퀴를 완전히 멈추는 것을 말한다. 이 글은 도로교통법 제31조와 관련 정의 규정(제2조)의 원문을 근거로 두 의무가 어떻게 다른지, 그리고 그 경계가 어디인지를 정리한다.
서행과 일시정지, 법이 정한 뜻부터 다르다
도로교통법 제2조는 용어의 뜻을 정의하면서 서행과 일시정지를 각각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 서행(제28호): “운전자가 차 또는 노면전차를 즉시 정지시킬 수 있는 정도의 느린 속도로 진행하는 것”
- 일시정지(제30호):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가 그 차 또는 노면전차의 바퀴를 일시적으로 완전히 정지시키는 것”
두 정의의 서술어 자체가 다르다. 서행은 “진행하는 것”이고, 일시정지는 “완전히 정지시키는 것”이다. 즉 서행은 속도를 낮춘 상태로 계속 움직이는 상태를 말하고, 일시정지는 바퀴가 실제로 멈추는 순간을 요구한다. 속도만 줄이고 차가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면, 이는 서행에 해당할 뿐 일시정지는 아니다.
이 정의는 도로교통법 전체에서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로 쓰이는 일반 정의이며, 제31조 자체에는 별도의 괄호 정의가 없다. 제31조를 읽을 때도 이 제2조의 정의가 그대로 적용된다.
제31조는 서행할 곳과 일시정지할 곳을 나눠 정한다
도로교통법 제31조(서행 또는 일시정지할 장소)는 제1항과 제2항으로 나뉘어 있고, 둘 다 “하여야 한다”로 끝나는 의무 규정이다. 재량이 아니라 지켜야 하는 의무라는 점은 두 항이 같지만, 요구하는 행위(효과)가 다르다.
제1항 — 서행하여야 하는 곳
- 교통정리를 하고 있지 아니하는 교차로
- 도로가 구부러진 부근
- 비탈길의 고갯마루 부근
- 가파른 비탈길의 내리막
- 시ㆍ도경찰청장이 도로에서의 위험을 방지하고 교통의 안전과 원활한 소통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안전표지로 지정한 곳
제2항 — 일시정지하여야 하는 곳
- 교통정리를 하고 있지 아니하고 좌우를 확인할 수 없거나 교통이 빈번한 교차로
- 시ㆍ도경찰청장이 도로에서의 위험을 방지하고 교통의 안전과 원활한 소통을 확보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안전표지로 지정한 곳
이 조문의 수범자는 “모든 차 또는 노면전차의 운전자”다. 도로교통법 제2조제17호가목이 ‘차’의 종류로 자동차, 건설기계, 원동기장치자전거, 자전거 등을 들고 있으므로, 자전거를 포함한 모든 차가 이 의무의 대상이다.
여기서 흔히 혼동하는 부분이 있다. “교통정리를 하고 있지 아니하는 교차로”는 제1항제1호의 서행 장소다. 같은 교차로라도 “좌우를 확인할 수 없거나 교통이 빈번한” 사정이 더해져야 제2항제1호의 일시정지 대상이 된다. 또한 도로가 구부러진 부근, 비탈길 고갯마루 부근, 가파른 비탈길 내리막은 제1항에만 있는 서행 장소이고 제2항에는 포함되지 않는다.
“멈춤 표지판”은 어느 쪽 지정인가
질문의 “멈춤 표지판”이 실무에서 흔히 말하는 정지 표지라면, 이는 제31조제2항제2호에 해당할 가능성이 크다. 이 호는 “시ㆍ도경찰청장이 … 필요하다고 인정하여 안전표지로 지정한 곳”에서 일시정지 의무를 부과한다. 흥미롭게도 제1항제5호와 제2항제2호는 요건 문언(“시ㆍ도경찰청장이 … 안전표지로 지정한 곳”)이 똑같고, 효과(서행인지 일시정지인지)만 다르다. 즉 같은 형식의 안전표지 지정이라도 어떤 표지로 어떤 의무를 지정했는지에 따라 운전자가 해야 할 행위가 달라진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장소에 어떤 표지가 설치되어 있는지, 그 개별 지정 내용은 이 조문 자체가 아니라 안전표지 지정 행위의 영역이라 이 글이 다루는 범위 밖이다.
중요한 것은, 표지판이 일시정지를 요구하는 지정이라면 운전자는 바퀴를 일시적으로 완전히 정지시켜야 한다는 점이다. 속도를 낮춰 서서히 지나가는 것은 서행의 모습일 뿐, 일시정지 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단속·처벌 여부는 이 조문만으로 말할 수 없다
제31조 위반에 대한 벌칙, 범칙금, 과태료 등 구체적인 제재는 이 조문 자체에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 글은 도로교통법 제31조와 제2조의 정의 규정 원문만을 근거로 서행과 일시정지의 의무 내용과 적용 장소를 정리한 것이며, 실제 단속이나 처벌의 기준·금액에 관한 사실은 다루지 않는다. 또한 제31조에 관한 대법원 판례도 확인되지 않는다.
참고로 — 현행 조문의 시행 및 개정 경위
도로교통법 제31조의 현재 문언은 법률 제17689호(2020. 12. 22. 공포)로 만들어졌고, 이후 2026. 10. 13. 시행된 현행 법률(법률 제22067호)에서도 그 내용이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법률 제22067호의 부칙은 음주운전 방지장치 부착 조건부 운전면허(제80조의2) 등에 관한 적용례와 경과조치를 두고 있을 뿐, 제31조를 고친 바는 없다. 2026. 12. 3. 시행 예정인 개정 법률(법률 제21728호)에서도 제31조의 문언은 변경되지 않는다.
참고 법령
- 도로교통법 제2조제17호가목, 제28호, 제30호 (정의)
- 도로교통법 제31조제1항제1호~제5호 (서행할 장소)
- 도로교통법 제31조제2항제1호~제2호 (일시정지할 장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