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 상대방을 안 부르고도 결정할 수 있나?
다툼이 있는 권리관계에 대하여 임시의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신청할 때, 법원이 채무자(상대방)의 의견을 청취해야 하는지가 실무에서 자주 묻는 질문이다. 민사집행법 제304조가 정한 기일 개최 원칙과 예외가 그 답이다.
기일을 열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
제304조는 명확하게 규정한다.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 재판에는 “변론기일 또는 채무자가 참석할 수 있는 심문기일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여기서 세 가지를 주목해야 한다:
첫째, 기일 개최는 의무다. 법문에 “열어야 한다”고 했으므로, 법원은 기일을 반드시 열어야 한다. 신청인의 주장만 듣고 상대방의 의견 없이 결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불허된다.
둘째, 기일의 형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변론기일을 열거나, 아니면 채무자가 참석할 수 있는 심문기일을 열면 된다. 어느 형태를 택하든 상관없다는 뜻이다.
셋째, 심문기일은 채무자가 실제로 참석할 기회를 보장해야 한다. 단순히 기일을 공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상대방이 실제로 나타나 의견을 제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기일을 열지 않을 수 있는 경우는?
그러나 제304조는 단서를 두었다: “그 기일을 열어 심리하면 가처분의 목적을 달성할 수 없는 사정이 있는 때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이것이 유일한 예외 조건이다. 기일을 열어서 심리하면 가처분의 목적 자체를 달성할 수 없는 사정이 존재할 때만 기일 없이 결정을 내릴 수 있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만약 기일을 열고 상대방의 주장을 재판부가 들으면, 가처분이 원래 목표한 바를 결국 이루지 못하게 된다는 뜻의 객관적 사정을 말한다. 이는 단순히 상황이 급박하다거나 복잡하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조건은 하나: 심리 자체가 가처분의 목적 달성을 불가능하게 한다는 객관적 사정이어야 한다.
제300조 제2항과의 관계
제304조가 적용되는 대상은 제300조 제2항이 정한 “다툼이 있는 권리관계에 대하여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이다.
제300조 제2항은 이런 유형의 가처분을 하려면 “특히 계속하는 권리관계에 끼칠 현저한 손해를 피하거나 급박한 위험을 막기 위하여, 또는 그 밖의 필요한 이유가 있을 경우”에만 하도록 제한한다. 기일 개최 의무는 이 범주에 속하는 모든 가처분에 일관되게 적용된다.
정리
상대방을 부르지 않고도 결정할 수 있나? 원칙은 그렇지 않다. 법문이 기일을 “열어야 한다”고 명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상대방을 부르지 않는 것은 아주 제한된 예외 상황에서만 인정된다.
참고 법령
- 민사집행법 제300조 (가처분의 목적)
- 민사집행법 제304조 (임시의 지위를 정하기 위한 가처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