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피해자 진술, 경찰은 전문가에게 꼭 물어야 할까 — 성폭력처벌법 제33조
질문: 판사는 재량인데, 경찰은 다른가
성폭력 사건에서 법원이나 수사기관이 정신건강의학과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학자 등 전문가에게 피해자(또는 행위자)의 정신·심리 상태나 진술 내용에 관한 의견을 물어보는 절차가 있다. 이를 정한 조문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하 성폭력처벌법) 제33조(전문가의 의견 조회)다.
흔히 “판사는 재량이지만 경찰·검찰은 반드시 전문가에게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원칙은 똑같이 재량이고, 예외적인 경우에만 수사기관에 조회 의무가 생긴다. 그 예외의 범위를 정확히 아는 것이 이 조문을 이해하는 핵심이다.
법원: 조회는 재량, 고려는 의무
현행 성폭력처벌법(법률 제21997호, 2026. 9. 29. 일부개정, 2026. 10. 2. 시행) 제33조제1항은 이렇게 규정한다.
“법원은 정신건강의학과의사, 심리학자, 사회복지학자, 그 밖의 관련 전문가로부터 행위자 또는 피해자의 정신ㆍ심리 상태에 대한 진단 소견 및 피해자의 진술 내용에 관한 의견을 조회할 수 있다.”
문언이 “조회할 수 있다”로 되어 있으므로 법원의 전문가 의견 조회는 재량 사항이다. 모든 사건에서 반드시 전문가 의견을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법원이 조회를 했다면 그 결과를 아무렇게나 무시할 수는 없다. 제2항은 “법원은 성폭력범죄를 조사ㆍ심리할 때에는 제1항에 따른 의견 조회의 결과를 고려하여야 한다”고 정해, 조회 결과를 고려할 의무를 법원에 부과한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고려 의무’와 ‘구속력’은 다르다는 것이다. 조문은 법원이 전문가 의견을 반드시 따라야 한다거나 그 결과에 구속된다고 정하지 않는다. 조사·심리 과정에서 참고 자료로 고려할 의무가 있을 뿐이다.
또한 법원이 전문가를 지정할 때는 아무나 고를 수 없다. 제3항에 따라 “법원은 법원행정처장이 정하는 관련 전문가 후보자 중에서 제1항에 따른 전문가를 지정하여야 한다.” 지정 자체는 의무이고, 그 대상은 법원행정처장이 미리 정해 둔 후보자 명단 중에서 골라야 한다.
수사기관: 원칙은 준용, 단 두 요건 충족 시 의무
제4항은 수사기관(경찰·검찰)에도 이 조문이 적용되도록 다리를 놓는다.
“제1항부터 제3항까지의 규정은 수사기관이 성폭력범죄를 수사하는 경우에 준용한다. 다만, 피해자가 13세 미만이거나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에는 관련 전문가에게 피해자의 정신ㆍ심리 상태에 대한 진단 소견 및 진술 내용에 관한 의견을 조회하여야 한다.”
이 조항은 본문과 단서로 나뉜다.
본문: 수사기관이 성폭력범죄를 수사할 때는 제1항부터 제3항까지를 “준용”한다. 즉 원칙적으로는 법원과 마찬가지로 전문가 의견 조회는 “할 수 있다”는 재량 사항이다. 수사기관이 모든 성폭력범죄 사건에서 전문가 의견을 조회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단서: 다음 두 가지 요건 중 하나라도 해당하면 재량이 의무로 바뀐다.
- 피해자가 13세 미만인 경우
- 피해자가 신체적인 또는 정신적인 장애로 사물을 변별하거나 의사를 결정할 능력이 미약한 경우
이 두 요건 중 하나에 해당하면 수사기관은 전문가에게 피해자의 정신·심리 상태에 대한 진단 소견 및 진술 내용에 관한 의견을 “조회하여야 한다.” 재량이 아니라 법적 의무다.
여기서 세 가지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 요건은 “13세 미만”이지 “13세 이하”가 아니다. 두 표현은 범위가 다르다.
- 요건에는 나이 기준(13세 미만)과 장애 기준(사물 변별·의사결정 능력 미약)이 함께 규정되어 있다. 나이 요건만 보고 장애 요건을 빠뜨리면 조문을 절반만 읽은 것이다.
- 의무적으로 조회해야 하는 대상은 피해자의 정신·심리 상태 진단 소견 및 진술 내용에 관한 의견이다. 제1항이 법원의 재량 조회 대상으로 “행위자 또는 피해자”를 모두 열거한 것과 달리, 제4항 단서의 의무 조회는 행위자가 아니라 피해자에 한정된다.
수사기관의 전문가는 누가 정하나
제5항은 준용 과정에서 지정권자를 바꿔 읽도록 정한다. “제4항에 따라 준용할 경우 ‘법원행정처장’은 ‘검찰총장 또는 경찰청장’으로 본다.” 즉 법원이 법원행정처장이 정한 후보자 중에서 전문가를 지정하는 것처럼, 수사기관은 검찰총장 또는 경찰청장이 정한 후보자 중에서 전문가를 지정해야 한다(제3항 준용). 다만 그 후보자 명단이나 자격 기준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운영되는지는 이 조문 자체에는 나와 있지 않다.
요약
| 구분 | 원칙 | 의무로 바뀌는 경우 |
|---|---|---|
| 법원 | 조회할 수 있다(재량), 조회 결과는 고려 의무 | 없음 — 항상 재량 |
| 수사기관 | 법원 규정 준용 → 조회할 수 있다(재량) | 피해자가 13세 미만이거나, 신체적·정신적 장애로 사물 변별·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경우 → 조회하여야 한다(의무) |
결국 질문에 대한 답은 이렇다. 경찰(수사기관)도 원칙적으로는 법원과 같은 재량 조항을 준용받는다. 다만 피해자가 13세 미만이거나 장애로 사물 변별·의사결정 능력이 미약한 경우에는 법률이 명시적으로 조회 의무를 부과한다. 그 외의 성폭력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이 전문가 의견을 조회하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절차 위반이 되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전문가 의견 조회 제도 자체는 진단 소견과 진술 내용에 관한 참고 의견을 구하는 절차이지, 그 결과가 유·무죄를 자동으로 결정하거나 수사기관·법원의 판단을 대신하는 제도가 아니라는 점도 함께 기억할 필요가 있다.
참고 법령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제33조(전문가의 의견 조회) 제1항·제2항·제3항·제4항·제5항
-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부칙(법률 제21997호, 2026. 9. 29.) 제1조(시행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