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가 합의해 주면 폭행은 끝나는데, 학대로 보면 달라지나요?
“부모님이 합의서를 써주셨으니 이제 끝난 거 아닌가요?” 자녀가 부모를 때린 사건에서 흔히 나오는 질문이다. 그런데 같은 행위를 폭행죄로 보느냐, 학대죄로 보느냐에 따라 ‘합의로 끝나는지’ 여부가 갈린다. 형법 조문을 그대로 놓고 비교해 보면 그 이유가 명확하다.
핵심만 먼저: 반의사불벌 조항이 있는 곳과 없는 곳
형법 제260조(폭행, 존속폭행) 제3항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제1항 및 제2항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이 조항이 바로 ‘반의사불벌죄’ 조항이다.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밝히면, 그 의사에 반해서는 검사가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뜻이다. 실무에서 흔히 ‘합의하면 처벌 안 받는다’고 말하는 그 근거가 바로 이 제3항이다.
그런데 이 제3항이 적용되는 대상은 조문에 분명히 적혀 있다 — “제1항 및 제2항의 죄”, 즉 폭행(제1항)과 존속폭행(제2항)뿐이다.
형법 제273조(학대, 존속학대)에는 이런 조항이 없다. 제273조는 제1항·제2항 두 개 항으로만 구성되어 있고, 제260조제3항에 대응하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는 문구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즉 같은 몸에 대한 가해 행위라도, 그것이 법적으로 ‘학대’로 평가되는 순간 피해자(또는 그 가족)의 의사만으로 절차를 끝낼 수 있는 법적 장치가 없어진다.
왜 같은 행위가 폭행이 아니라 학대가 될 수 있나: 객체 요건의 차이
두 죄는 ‘누구에게 했는가’를 가르는 기준이 다르다.
- 제260조제1항(폭행): “사람의 신체에 대하여 폭행을 가한 자” —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 특별한 관계를 요구하지 않는다.
- 제273조제1항(학대): “자기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을 학대한 자” — 가해자가 피해자를 보호 또는 감독하는 관계에 있어야 한다.
즉 학대죄가 성립하려면 가해 행위 자체 외에도 ‘보호 또는 감독’이라는 관계 요건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 두 요건(관계 요건의 존재 여부)을 섞어서 판단해서는 안 된다. 다만 ‘보호’ 또는 ‘감독’이라는 말에 대해 형법은 괄호 안에 별도의 정의를 두고 있지 않다. ‘돌봄’·‘부양’·‘모시는’과 같은 표현은 조문에 등장하는 말이 아니므로, 이를 요건처럼 단정해서 쓰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부모라는 사실만으로 존속학대가 되는 건 아니다
여기서 혼동하기 쉬운 지점이 있다. “부모를 때렸으니 존속폭행”, “부모를 상대로 한 가해이니 존속학대”라는 식으로 단순화하면 안 된다. 조문을 보자.
- 제260조제2항(존속폭행):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하여 제1항의 죄를 범한 때” — 제1항의 ‘폭행’이 직계존속을 상대로 일어나야 한다.
- 제273조제2항(존속학대): “자기 또는 배우자의 직계존속에 대하여 전항의 죄를 범한 때” — 전항(제1항)의 ‘학대’가 직계존속을 상대로 일어나야 한다.
즉 존속학대가 성립하려면 ① 직계존속이라는 신분 관계와 ② 제1항의 ‘보호 또는 감독을 받는 사람’에 대한 ‘학대’라는 요건이 함께 충족되어야 한다. 부모라는 사실 하나만으로 자동으로 존속학대가 되는 것이 아니고, 자녀가 그 부모를 보호 또는 감독하는 관계에서 학대에 해당하는 행위를 했는지가 함께 검토되어야 한다.
법정형 비교 — 형량 차이가 아니라 조항 구조의 차이가 핵심
조문상 법정형을 그대로 나열하면 다음과 같다.
| 1항(기본) | 2항(존속) | 3항 | |
|---|---|---|---|
| 제260조(폭행) | 2년 이하의 징역, 500만원 이하의 벌금, 구류 또는 과료 |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 | 반의사불벌 조항 있음 |
| 제273조(학대) |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 |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 | (해당 조항 없음) |
눈에 띄는 점 두 가지다.
첫째, 기본형(제1항)에서 폭행죄에는 ‘구류 또는 과료’라는 비교적 경한 선택형이 추가로 있는 반면, 학대죄에는 구류·과료가 없다. 학대죄의 법정형은 징역 또는 벌금 두 가지로만 구성된다.
둘째, 존속폭행과 존속학대의 법정형(제2항)은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완전히 같다. 즉 두 죄를 가르는 지점은 형량의 무겁고 가벼움이 아니라, 제260조제3항과 같은 반의사불벌 조항이 붙어 있는지다. 형량만 보고 두 죄의 성격을 구분하려 하면 이 핵심을 놓치게 된다.
상해·사망으로 이어지면: 제275조 유기등 치사상
학대 행위로 상해나 사망이라는 결과가 발생하면 형법 제275조(유기등 치사상)가 적용될 수 있다. 다만 이 조항은 제271조 또는 제273조의 죄에만 연결되고, 제260조(폭행·존속폭행)는 대상이 아니다. 즉 단순 폭행이 상해·사망으로 이어진 경우와, 학대가 상해·사망으로 이어진 경우는 적용 조문 자체가 다르다.
제275조의 법정형은 다음과 같다.
- 제1항: 상해에 이르게 한 때 7년 이하의 징역, 사망에 이르게 한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
- 제2항(직계존속 대상): 상해에 이르게 한 때 3년 이상의 유기징역, 사망에 이르게 한 때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
이 조문들, 2026년에 바뀐 게 아니다
현재 시행 중인 형법은 법률 제22007호(2026. 9. 29. 공포, 2026. 10. 2. 시행)다. 다만 이 개정의 부칙은 “이 법은 2026년 10월 2일부터 시행한다”는 시행일 조항만 두고 있고, 별도의 적용례나 경과조치는 없다.
그리고 여기서 다룬 제260조·제273조·제275조의 실질 문언 자체는 이번 개정(제22007호)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제260조와 제273조의 현재 문언은 1995. 12. 29. 공포된 법률 제5057호에서 만들어졌고, 제275조의 현재 문언(및 제목 “유기등 치사상”)은 2023. 8. 8. 공포된 법률 제19582호에서 만들어졌다. 즉 폭행·학대·유기등 치사상 조문의 내용은 이미 오래전부터 또는 수년 전부터 그대로이고, 2026년 개정이 이 내용을 바꾼 것은 아니다.
정리
부모가 “합의해 줬으니 끝”이라고 말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형법 제260조제3항의 반의사불벌 조항이고, 이 조항은 제1항·제2항, 즉 폭행·존속폭행에만 적용된다. 같은 행위가 제273조의 학대·존속학대로 평가되면 이 조항이 적용되지 않으므로, 피해자(부모)의 의사만으로 절차가 종결되지 않는다. 다만 학대죄가 성립하려면 폭행과 달리 가해자가 피해자를 보호 또는 감독하는 관계라는 요건이 추가로 필요하고, 부모라는 신분만으로 존속학대가 자동으로 성립하는 것도 아니다. 결국 어느 조문이 적용되는지는 행위의 외형이 아니라 관계 요건의 충족 여부에서 갈리며, 이는 사안마다 개별적으로 검토되어야 할 문제다.
참고 법령
- 형법 제260조(폭행, 존속폭행) 제1항, 제2항, 제3항
- 형법 제273조(학대, 존속학대) 제1항, 제2항
- 형법 제275조(유기등 치사상) 제1항, 제2항
- 형법 부칙 <제22007호, 2026.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