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플이 지워지기 전에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할 수 있을까: 형사소송법 제184조 청구권자에 피해자는 없다
온라인 악플·명예훼손 게시물은 작성자가 삭제하거나 플랫폼이 내리면 그 순간 증거가 사라진다. 그래서 “지워지기 전에 법원에 증거보전을 신청할 수 있느냐”는 질문이 자주 나온다. 결론부터 말하면, 형사 절차에서 이 청구를 할 수 있는 사람의 목록에 피해자는 들어 있지 않다.
형사소송법 제184조 — 청구할 수 있는 사람
형사소송법 제184조제1항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검사, 피고인, 피의자 또는 변호인은 미리 증거를 보전하지 아니하면 그 증거를 사용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는 때에는 제1회 공판기일 전이라도 판사에게 압수, 수색, 검증, 증인신문 또는 감정을 청구할 수 있다.”
이 조문이 정한 청구권자는 검사, 피고인, 피의자, 변호인 네 부류뿐이다. 악플 사건에서 수사 대상이 된 쪽, 즉 글을 쓴 사람(피의자)이나 그 변호인, 그리고 수사·공소를 담당하는 검사는 이 절차를 쓸 수 있다. 그러나 피해자나 고소인은 이 목록에 없다. “피해자도 형사 증거보전을 청구할 수 있다”는 식의 설명은 조문과 맞지 않는다.
여기서 꼭 구분해야 할 두 가지가 있다.
- 요건: “미리 증거를 보전하지 아니하면 그 증거를 사용하기 곤란한 사정이 있는 때” — 악플처럼 삭제되기 쉬운 게시물이라면 이 요건을 따져볼 여지는 있다.
- 효과: “제1회 공판기일 전이라도 판사에게” 압수, 수색, 검증, 증인신문 또는 감정을 청구할 수 있다 — 이 절차는 ‘법원에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판사에게 청구’하는 것이고, 재량(“할 수 있다”)에 속한다.
요건이 갖춰졌다고 해서 청구권자가 아닌 사람까지 청구할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니다. 요건과 청구권자는 별개의 조건이고, 둘 다 충족돼야 한다.
그럼 피해자는 어떻게 하나 — 수사기관을 통하는 구조
피해자가 직접 판사에게 증거보전을 청구할 길이 조문상 없다는 것은, 피해자가 손 놓고 있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다만 그 경로는 형사소송법 제184조가 아니라, 고소·신고를 받은 검사나 사법경찰관이 수사 과정에서 필요하다고 판단해 압수·수색·검증 등을 활용하는 구조를 거친다. 즉 피해자가 수사기관에 상황을 알리고, 그 수사기관이 검사의 자격으로 제184조의 청구를 하거나 통상의 수사 절차(압수·수색 등)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이 글의 근거 자료에는 그 구체적 절차·방식까지는 담겨 있지 않으므로, 여기서 더 나아가 특정 절차를 단정하지는 않는다.
청구 절차와 효과 — 제184조 제2항~제4항
제184조는 총 4개 항으로 구성돼 있고, 호(號)는 없다.
- 제2항: “전항의 청구를 받은 판사는 그 처분에 관하여 법원 또는 재판장과 동일한 권한이 있다.” — 청구를 받은 판사는 법원·재판장과 같은 권한으로 그 처분을 한다.
- 제3항: “제1항의 청구를 함에는 서면으로 그 사유를 소명하여야 한다.” — 청구는 서면으로 하고, 사유를 소명해야 하는 의무 규정이다.
- 제4항: “제1항의 청구를 기각하는 결정에 대하여는 3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다.” — 청구가 기각되면 3일 이내에 항고할 수 있다. 이 항은 2007년 6월 1일 공포된 법률(법률 제8496호)로 신설된 것으로, 2026년 현재 시행 중인 형사소송법(법률 제21857호, 2026. 8. 4. 일부개정, 2026. 10. 2. 시행)이 이 조문을 새로 고친 것이 아니다. 즉 제184조의 문언 자체는 2007년 개정 이후 그대로 이어지고 있으며, 이는 2027년 12월 31일 시행 예정인 법률(제21241호)에서도 동일하게 유지된다.
참고로 법률 제21857호의 부칙은 시행일 자체를 단계적으로 나눠 정하고(원칙 2026. 10. 2. 시행, 일부 조문은 그 이후), 여러 적용례·경과조치를 두고 있지만, 그 어느 조항도 제184조에 관한 적용례나 경과조치를 정하고 있지 않다.
민사소송법의 증거보전 — 형사와 다른 문언
민사소송법에도 증거보전 제도가 있지만, 형사소송법 제184조와는 요건·주체·효과가 다르다. 민사소송법 제375조는 다음과 같다.
“법원은 미리 증거조사를 하지 아니하면 그 증거를 사용하기 곤란할 사정이 있다고 인정한 때에는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이 장의 규정에 따라 증거조사를 할 수 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세 가지다.
- 신청의 주체: 형사의 ‘청구권자’와 달리, 민사는 “당사자의 신청”이다. 민사소송의 당사자(원고·피고가 될 사람 포함)가 신청할 수 있다는 뜻이고, 이는 형사소송법상 “청구”와 용어·구조가 다르다. 둘을 섞어 쓰면 안 된다.
- 판단 주체: 민사에서는 “법원”이 판단한다. 형사소송법 제184조처럼 “판사”에게 청구하는 구조와 다르다.
- 재량성: “사용하기 곤란할 사정이 있다고 인정한 때에” “할 수 있다”로 돼 있어, 신청한다고 곧바로 증거조사가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법원의 재량적 판단을 거친다. 신청과 동시에 증거조사가 자동으로 실시된다고 쓰는 것은 문언과 다르다.
민사소송법 제375조는 항·호 구분이 없는 단일 조문이고, 연혁 표기도 없다. 이 문언을 만든 개정이 언제인지는 공개된 자료로 확인되지 않으므로, 2026년 9월 29일 공포된 법률(제21993호)이 이 문언을 새로 만든 것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 해당 법률의 부칙은 시행일(2026. 10. 2.)만을 정하고 있다. 2028년 3월 1일 시행 예정인 법률(제21455호)이 민사소송법 제376조 등 일부 조문을 고치지만, 그 개정이 제375조 문언을 바꾸는 것은 아니며 제375조는 그 이후에도 같은 문언을 유지한다. 참고로 제376조 자체가 어떤 내용으로 바뀌는지는 공개된 자료로 확인되지 않으므로 이 글에서 다루지 않는다.
시행일을 혼동하기 쉬운 조문들 — 현행처럼 쓰면 안 되는 것들
형사소송법은 큰 개정(법률 제21857호)을 거치면서 조문별로 시행일이 다르게 설계돼 있다. 이 글이 다루는 2026년 10월 중순 기준으로, 아직 시행되지 않은 조문들이 있다.
- 제197조의4(수사의 경합), 제260조(재정신청), 제261조(지방공소청장 등의 처리): 2027년 2월 5일부터 시행된다. 제260조제1항과 제261조는 지방공소청에 관한 부분을 제외한 나머지 개정규정에 한해 이 시행일이 적용된다. 아직 시행 전이므로 이 조문들을 현재 적용되는 내용인 것처럼 설명하면 안 된다.
- 제220조의2(압수·수색·검증의 영상녹화), 제244조의6(피의자신문 등의 녹음): 2027년 8월 5일부터 시행된다. 역시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이런 조문들은 악플 사건의 수사·증거 수집 과정과 맞물려 언급되기도 하지만, 글을 쓰는 시점(발행일 기준)에 “지금 적용되는 규정”이라고 단정하면 틀린 정보가 된다.
정리
악플이 삭제되기 전에 그 내용을 법적으로 남겨두고 싶은 피해자의 마음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형사소송법 제184조가 정한 증거보전 청구권자는 검사·피고인·피의자·변호인으로 한정돼 있고, 피해자나 고소인은 이 조문으로 직접 판사에게 청구할 수 없다. 민사소송법 제375조의 증거보전도 “당사자의 신청”에 따라 법원이 재량으로 판단하는 구조이며, 신청하면 무조건 증거조사가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형사의 ‘청구’와 민사의 ‘신청’은 주체·절차·판단 기관이 다른 별개의 제도이므로, 이를 혼동해 설명하는 자료는 주의해서 읽을 필요가 있다.
참고 법령
- 형사소송법 제184조(증거보전의 청구와 그 절차) 제1항~제4항
- 형사소송법 부칙 <제21857호, 2026. 8. 4.> 제1조
- 민사소송법 제375조(증거보전의 요건)
- 민사소송법 부칙 <제21993호, 2026. 9.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