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의서에 '원상복구'라고만 적었다면 — 입주 당시 상태가 기준일까
임대차 계약이 끝나면 거의 예외 없이 등장하는 문구가 있다. “임차인은 원상복구하여 반환한다.” 합의서나 계약서에 이렇게만 적혀 있을 때, 많은 사람이 “입주할 때 사진 찍어둔 그 상태로만 돌려놓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질문에 법 조문이 명확한 답을 주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민법은 ‘원상복구’라는 범위 기준을 정해두고 있지 않다.
민법이 정한 것은 ‘원상회복 의무’이지 ‘복구 범위’가 아니다
임대차와 관련해 자주 인용되는 조문은 민법 제615조다.
제615조(차주의 원상회복의무와 철거권) 차주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에는 이를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 이에 부속시킨 물건은 철거할 수 있다.
여기서 눈여겨봐야 할 점이 있다. 조문 제목과 본문 어디에도 ‘원상복구’라는 표현은 없다. 조문이 쓰는 말은 ‘원상회복’이다. 계약서나 합의서에서 관행적으로 쓰는 ‘원상복구’는 실무 용어일 뿐, 민법 제615조의 문언 자체는 아니다.
더 중요한 것은 이 조문이 “어디까지” 회복해야 하는지, 즉 범위나 정도를 정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조문은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는 의무만을 선언할 뿐, 그 의무의 구체적 기준—예를 들어 입주 당시 상태를 말하는 것인지, 통상적인 사용에 따른 마모는 제외하는 것인지, 임차인이 설치한 시설을 어느 수준까지 되돌려야 하는지—를 조문 자체가 정해주지 않는다. 결국 “합의서에 ‘원상복구’라고만 적었으면 입주할 때 상태로만 되돌리면 되는가”라는 질문의 답은 조문에서 바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별 계약의 문언·거래 관행·구체적 사정 해석의 문제로 넘어간다는 뜻이다. 이 글은 그 해석의 정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조문이 실제로 규율하는 범위와 규율하지 않는 범위를 구분해 보여주는 데 목적이 있다.
의무와 재량은 구분된다: “회복해야 한다” vs “철거할 수 있다”
제615조는 한 문장 안에 성격이 다른 두 가지를 담고 있다.
- 앞 문장: “원상에 회복하여야 한다” → 의무. 차주(빌린 사람)는 이 의무를 부담한다.
- 뒷 문장: “이에 부속시킨 물건은 철거할 수 있다” → 재량. 차주가 물건에 부속시킨 것을 철거하는 것은 “할 수 있다”고 되어 있을 뿐, “철거해야 한다”는 의무가 아니다.
즉 부속물을 반드시 철거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철거는 차주에게 주어진 권리의 성격을 갖는다. 조문 제목이 “차주의 원상회복의무와 철거권”이라고 붙인 것도 이 구분을 그대로 보여준다—앞은 ‘의무’, 뒤는 ‘권(權)‘이다. 실무에서 “부속시킨 시설을 철거해야만 원상회복이 끝난다”는 식으로 단정하는 것은 조문의 문언 구조와 맞지 않을 수 있다.
의무가 발생하는 시점: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
제615조는 원상회복 의무가 생기는 시점을 “차주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로 명시한다. 반환 시점을 기준으로 원상회복 의무가 문제 된다는 것이며, 그 이전 단계(예컨대 계약 존속 중의 유지·보수 문제)까지 이 조문이 규율하는 것은 아니다.
임대차에는 제615조가 ‘직접’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준용’된다
여기서 흔히 놓치는 부분이 있다. 제615조는 원래 사용대차(무상으로 물건을 빌려 쓰는 ‘차주’와 ‘차용물’ 관계)에 관한 조문이다. 임대차(월세·전세 등 유상 임대차) 관계에 이 조문이 적용되려면 별도의 연결 조문이 필요한데, 그것이 제654조다.
제654조(준용규정) 제610조제1항, 제615조 내지 제617조의 규정은 임대차에 이를 준용한다.
즉 임대차 계약에서 원상회복 의무를 말할 때는 “임대차 조문이 직접 정한 의무”가 아니라, “사용대차 조문인 제615조를 임대차에도 준용한다”는 구조로 이해해야 한다. 준용 대상은 제610조제1항, 그리고 제615조부터 제617조까지다. 제616조·제617조의 구체적인 내용까지 이 글에서 확인된 것은 아니므로, 그 조문들의 내용을 단정해 서술하지는 않는다.
이 조문이 정하지 않는 것들
정리하면, 제615조·제654조가 정하지 않는 사항은 다음과 같다.
- 원상회복해야 할 범위나 정도(입주 당시 상태 기준인지, 통상 마모를 제외하는지 등)
- ‘부속시킨 물건’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정의
- 원상회복을 이행하지 않을 때의 구체적 효과나 절차
- 합의서에 ‘원상복구’라고 기재했을 때 그 문구를 어떻게 해석할지에 대한 기준
이런 사항들은 조문 자체가 아니라 계약 내용의 해석, 개별 사정에 대한 판단의 영역이며, 이 글이 다루는 법제처 조문 원문의 범위를 넘어선다. 이 주제에 관해 참고할 만한 확립된 판례가 이 글에서 확인되지는 않았으므로, 특정 판결이 어떤 기준을 세웠다고 단정하지 않는다.
참고로 알아둘 부칙 사항
현행 민법(법률 제21454호, 2026. 3. 17. 시행)의 부칙은 시행일을 “공포한 날부터 시행”으로 정하고, 상속권 상실 선고·유류분 등에 관한 적용례·특례를 두고 있다(부칙 제1조~제4조). 다만 이 개정으로 함께 고쳐진 조문은 제1001조·제1008조·제1010조·제1115조이며, 제615조·제654조는 이번 개정에서 손질된 조문이 아니다. 두 조문에는 별도의 연혁 표기가 없어, 현재 문언이 이번 개정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근거는 없다.
요약
- 민법 제615조는 ‘원상회복 의무’(의무)와 ‘부속물 철거권’(재량)을 함께 규정하지만, 둘의 성격은 다르다.
- 원상회복해야 할 구체적 범위·정도는 조문에 나와 있지 않다. “입주 당시 상태로만 돌려놓으면 된다”는 식의 결론이 조문 자체에서 도출되는 것은 아니다.
- 임대차에는 제615조가 직접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제654조의 준용을 통해 연결된다.
- 의무의 발생 시점은 “차용물을 반환하는 때”다.
참고 법령
- 민법 제615조(차주의 원상회복의무와 철거권)
- 민법 제654조(준용규정)
- 민법 부칙 제1조~제4조(법률 제21454호, 2026. 3. 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