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이 막혀서 보증금을 못 돌려줬다면, 지연이자를 안 내도 될까
전세든 월세든, 계약이 끝나 세입자가 나가려는데 집주인이 “대출이 막혀서 보증금을 못 내준다”고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은행 대출 규제가 강화되면서 이런 상황을 겪는 사람이 늘고 있습니다. 이때 많은 임대인이 “내 잘못이 아니라 대출 규제 때문이니 지연이자는 못 낸다”고 생각합니다. 이 생각이 민법상 맞는지, 조문을 근거로 짚어봅니다.
결론부터: 민법 제397조제2항의 문언
민법 제397조제2항은 이렇게 정합니다.
“전항의 손해배상에 관하여는 채권자는 손해의 증명을 요하지 아니하고 채무자는 과실없음을 항변하지 못한다.”
이 조문이 정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 채권자(돈을 받아야 할 사람)는 손해를 증명할 필요가 없다. 보증금을 늦게 돌려받아서 실제로 얼마나 손해를 봤는지 입증하지 않아도 됩니다.
- 채무자(돈을 갚아야 할 사람)는 “내 잘못이 없었다”는 항변을 하지 못한다. 즉 자신에게 고의나 과실이 없었다는 사정을 내세워 지연이자를 면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조문의 적용 범위입니다. 제2항은 “전항의 손해배상에 관하여는”으로 시작합니다. 전항, 즉 제1항이 정하는 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에 관한 특칙이라는 뜻입니다. 채무자의 책임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 원칙이 아니라, 돈을 갚지 못했을 때의 손해배상 문제에 한정된 규정입니다.
“대출 규제 때문”이라는 사정은 조문상 어떤 의미인가
조문 어디에도 ‘대출 규제’나 ‘보증금’이라는 표현은 없습니다. 조문이 직접 다루는 것은 오직 “과실없음”이라는 항변을 막는다는 점뿐입니다.
이 문언을 풀어보면, 임대인이 “은행에서 대출을 안 내줘서 어쩔 수 없었다”는 사정을 든다면 이는 사실상 “나에게 잘못(과실)이 없었다”는 취지의 항변에 해당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제397조제2항은 금전채무불이행에 관한 손해배상에서 채무자가 이런 취지의 항변을 하지 못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 조문 자체가 대출 규제를 항변 사유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명시한 것은 아니며, 조문의 구조상 그런 취지로 읽힐 수 있는 규정이라는 점을 구분해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럼 지연이자는 얼마인가 — 제397조제1항
지연이자, 즉 손해배상액을 정하는 기준은 같은 조 제1항에 있습니다.
“금전채무불이행의 손해배상액은 법정이율에 의한다. 그러나 법령의 제한에 위반하지 아니한 약정이율이 있으면 그 이율에 의한다.”
원칙은 법정이율입니다. 다만 단서에 따라 계약서 등에 정한 약정이율이 있고, 그 이율이 법령의 제한을 위반하지 않는다면 그 약정이율이 적용됩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은, 약정이율이 있다고 해서 그 이율이 항상 적용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법령의 제한을 위반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법정이율의 구체적인 수치는 제397조 자체에 나와 있지 않습니다. 실제 지연손해금을 계산하려면 별도로 적용되는 이율을 확인해야 합니다.
언제부터 지체책임이 시작되나 — 제387조
지연이자를 계산하려면 “언제부터” 지체된 것으로 볼지도 정해야 합니다. 이는 민법 제387조가 정합니다.
“①채무이행의 확정한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한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채무이행의 불확정한 기한이 있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기한이 도래함을 안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②채무이행의 기한이 없는 경우에는 채무자는 이행청구를 받은 때로부터 지체책임이 있다.”
이 조문은 지체책임의 시작 시점을 세 가지로 나눕니다.
- 확정기한이 있는 채무: 그 기한이 도래한 때부터
- 불확정기한이 있는 채무: 채무자가 기한이 도래했음을 안 때부터
- 기한을 정하지 않은 채무: 채권자가 이행을 청구한 때부터
보증금 반환채무가 이 세 유형 가운데 정확히 어디에 해당하는지는 제387조 조문만으로는 정해지지 않습니다. 계약 내용과 구체적 사정(계약 종료일, 명도 시점, 반환 청구 시점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입니다.
정리 — 임대인·임차인이 확인해야 할 것
- 지연이자를 다투는 국면이라면, 임대인이 “과실이 없었다”는 사정을 들어 책임을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민법 제397조제2항이 그런 취지의 항변을 막고 있기 때문입니다.
- 반면 임차인 입장에서는 손해를 별도로 증명할 필요 없이 지연손해금을 구할 수 있습니다.
- 다만 실제로 얼마를 언제부터 계산할지는 제397조제1항(법정이율 또는 적법한 약정이율)과 제387조(지체책임 개시 시점)를 함께 살펴야 답이 나옵니다.
- 이 주제에 관해 확인된 대법원 판례는 이 글에서 다루지 않았습니다. 구체적 사건에서는 계약서 문구와 사실관계에 따라 결론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참고 법령
- 민법 제387조(이행기와 이행지체) 제1항, 제2항
- 민법 제397조(금전채무불이행에 대한 특칙) 제1항, 제2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