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첨으로 배정된 종교계 사립고, 종교수업을 거부할 수 있나요
고교 평준화 지역에서는 학생이 원하는 학교를 직접 고르지 못하고 학교군 내에서 추첨으로 배정된다. 그 결과 신앙이 없거나 다른 종교를 가진 학생이 특정 종교를 건학이념으로 하는 사립고(종립학교)에 배정되는 일이 생긴다. 이 학교가 종교행사·종교과목 수업을 실시할 때 학생은 이를 거부할 수 있는가. 대법원 2010. 4. 22. 선고 2008다38288 전원합의체 판결(손해배상(기))이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뤘다.
결론부터: “거부하면 일률적으로 면제”도, “강제배정이니 일률적으로 따라야 함”도 아니다
대법원은 두 개의 기본권이 충돌하는 상황으로 이 문제를 구성했다. 종립학교가 가지는 종교교육의 자유·운영의 자유와, 학생이 가지는 소극적 종교행위의 자유·소극적 신앙고백의 자유다. 판결은 어느 한쪽이 당연히 우선한다고 보지 않았다. 대신 구체적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한 이익형량과 두 기본권 사이의 실제적 조화를 통해, 개별 사안마다 위법성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이 판결의 의미를 한 줄로 줄이면 이렇다.
- 종립학교는 종교교육을 할 자유를 가진다. 종파교육을 실시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한계를 넘었다고 단정할 수 없다.
- 학생은 자신의 의사에 반한 종교교육을 거부할 자유를 가진다. 동시에 학생도 그 한계 안에서 실시되는 종교교육은 용인해야 한다.
- 결국 “종교수업을 거부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양자택일이 아니라, 그 학교의 종교교육이 사회통념상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넘었는지를 먼저 가려야 답이 나오는 구조다.
왜 강제배정 자체는 문제 삼지 않았나
판결은 먼저 평준화정책에 따른 학교 강제배정제도 자체가 위헌인지를 짚었다. 결론은 위헌이 아니라는 것이다. 공교육체계를 헌법이 교육제도의 근간으로 삼고 있고, 평준화정책이 고입 과열과 그 부작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사정, 그로 인한 기본권 제한의 정도 등을 모두 고려하면, 강제배정으로 학생이나 학교법인의 기본권에 일부 제한이 가해진다 해도 그것만으로 본질적 침해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이다.
다만 강제배정제도가 합헌이라는 것과, 배정된 학교에서 실제로 이뤄지는 종교교육이 적법한지는 별개의 문제다. 판결은 바로 이 지점에서 두 번째 쟁점, 즉 기본권 충돌의 조화점을 찾는 작업으로 넘어간다.
어떤 경우에 “한계를 넘었다”고 보는가
판결(다수의견)은 종립학교가 종교적 중립성이 유지된 보편적 교양 수준을 넘어서, 학교 설립이념이 된 특정 종교교리를 전파하는 ‘종파교육’ 형태의 종교교육을 실시하는 경우, 다음 사정들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사회공동체의 건전한 상식과 법감정에 비추어 용인될 수 있는 한계를 초과했는지를 판단한다고 밝혔다.
- 종교교육의 구체적인 내용과 정도
- 그 종교교육이 일시적인 것인지 계속적인 것인지
- 학생들에게 사전에 충분한 설명을 하고 동의를 구했는지
- 학생들이 불이익을 염려하지 않고 자유롭게 대체과목을 선택하거나 종교교육 참여를 거부할 수 있었는지
이 네 가지는 어느 하나만 충족되거나 결여된다고 결론이 바로 나는 요건이 아니다. 판결은 이를 “종합적으로 고려”한다고 명시했다.
실제 사건에서 대법원은, 해당 학교가 경건회·수요예배·부활절 예배·생활관 교육 등 종교행사에 불참 시 지각 처리나 청소 등 불이익을 주어 참가 거부가 사실상 불가능한 분위기를 조성했고, 종교과목 수업에서도 대체과목을 개설하지 않아 학생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지 않았으며, 학생이 수차례 거부감을 표시했음에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는 사정을 근거로, 그 학교의 종교교육이 한계를 벗어나 학생의 종교에 관한 인격적 법익을 침해하는 위법한 행위라고 판단했다.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판결은 학생이 명시적으로 종교과목 수업에 대한 거부 의사를 표시한 바 없었다는 사실도 함께 언급하면서, 그런 명시적 거부가 없었다는 사정만으로 결론이 달라지지는 않는다고 했다. 즉 다수의견은 “학생이 명시적으로, 진지하게 거부 의사를 밝히고 부모도 동의해야 비로소 위법해진다”는 식의 엄격한 요건을 세우지 않았다. 이런 엄격한 요건론은 이 판결에서 3인 대법관의 반대의견이 제시한 기준이며, 전학 기회 같은 보완책의 부재와 부모 동의까지 요구한 것도 반대의견의 논리다. 다수의견과 섞어서 이해하면 안 된다.
왜 ‘인격적 법익 침해’라는 민법 구성을 썼나
이 사건은 헌법상 종교의 자유 조항이 학교에 직접 적용된 사건이 아니다. 대법원은, 헌법상 기본권은 원래 공권력의 침해를 막는 방어적 권리이지만 동시에 헌법이 정한 객관적 가치질서를 구체화한 것이어서 사인 간의 법률관계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보면서도, 그 효력은 원칙적으로 민법 제2조(신의성실)·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제750조(불법행위)·제751조(정신적 손해의 배상)와 같은 일반조항을 통해 간접적으로만 사법관계에 미친다고 밝혔다. 그래서 종교의 자유 침해 문제도 이 일반조항들을 통해 사법상 보호되는 ‘종교에 관한 인격적 법익’ 침해라는 형태로 구체화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했다. 학교법인(사립학교 재단)이 사인(私人)이기 때문에, 헌법 조문을 바로 들이대는 것이 아니라 민법의 불법행위 책임 틀로 문제를 풀어낸 것이다.
교육감·지방자치단체의 책임은 별개로 판단됐다
이 사건에서는 학교법인 외에 지방자치단체(관할 교육감)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었다. 그러나 대법원은 교육감과 담당 공무원이 취한 일부 시정조치만으로는 위법한 종교교육이나 징계처분을 막기에 부족해 결과적으로 학생의 인격적 법익 침해가 발생했다 하더라도, 교육감이 더 이상의 시정·변경명령 권한 등을 행사하지 않은 것이 직무상 의무 위반으로서 위법하다고 볼 정도까지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교육감의 권한 불행사가 위법하다고 인정되려면 그 재량 불행사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했거나 현저하게 합리성을 잃어 사회적 타당성이 없는 정도에 이르러야 한다는 기준을 세우고, 이 사건에서는 그 정도에 이르지 않았다고 본 것이다.
그 결과 대법원의 주문은 학교법인에 대한 부분은 파기하여 환송하고, 지방자치단체에 대한 상고는 기각했다. 즉 학교법인의 책임 유무는 다시 심리하도록 돌려보냈지만, 교육감·지방자치단체 쪽의 배상책임은 인정되지 않은 채로 확정됐다.
법령은 뭐라고 되어 있나: 종교교육 금지 조항의 적용 범위
이 판결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교육기본법 제6조(교육의 중립성)는 다음과 같다.
① 교육은 교육 본래의 목적에 따라 그 기능을 다하도록 운영되어야 하며, 정치적ㆍ파당적 또는 개인적 편견을 전파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용되어서는 아니 된다. ②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에서는 특정한 종교를 위한 종교교육을 하여서는 아니 된다.
여기서 꼭 짚어야 할 부분이 있다. 제2항의 종교교육 금지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학교”에만 적용된다. 종교단체가 세운 사립학교, 즉 종립학교에는 이 금지 조항이 적용되지 않는다. “학교에서는 종교교육이 금지된다”는 식으로 일반화하면 법령을 잘못 읽은 것이다. 종립학교가 종교교육을 할 수 있는 근거는 바로 이 조항이 사립학교를 적용 대상에서 빼놓았다는 데, 그리고 헌법상 종교의 자유·사학 운영의 자유에 있다.
헌법 제20조(종교의 자유)는 다음과 같다.
① 모든 국민은 종교의 자유를 가진다. ② 국교는 인정되지 아니하며, 종교와 정치는 분리된다.
판결이 참조한 것은 제1항이다. 종립학교 학생의 소극적 종교행위의 자유·소극적 신앙고백의 자유, 그리고 학교법인의 종교교육의 자유가 모두 이 제1항에서 도출된다. 제2항의 국교 불인정·정교분리는 이 판결의 직접적 근거로 쓰이지 않았다.
정리
- 추첨으로 종립학교에 배정됐다는 사실 자체는 위헌·위법한 제도의 결과가 아니다. 고교 평준화와 강제배정제도 자체는 대법원이 합헌으로 판단한 틀이다.
- 그 학교의 종교수업·종교행사를 거부할 수 있는지는 “종교수업이니까 일률적으로 거부 가능”이 아니라, 그 종교교육이 내용·정도·계속성·사전 설명과 동의 여부·대체과목이나 참여 거부의 실질적 가능성을 종합할 때 사회통념상 용인되는 한계를 넘었는지로 판가름난다.
- 학생이 명시적으로 거부 의사를 밝히지 않았다는 사정만으로 학교 측 책임이 면제되지는 않는다(다수의견). 반면 “명시적 거부 표시 + 전학 등 보완책 부재 + 부모 동의”까지 요구하는 입장은 이 판결의 반대의견이다.
- 학교법인의 책임은 민법상 불법행위(인격적 법익 침해) 구성으로 판단되며, 헌법 조문이 학교에 직접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 교육감·지방자치단체에 대해서는 시정·변경명령 권한을 더 행사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위법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보아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참고 법령·조문
- 교육기본법 제6조(교육의 중립성) 제1항·제2항
- 대한민국헌법 제20조 제1항·제2항
- 대한민국헌법 제10조, 제31조 제1항·제4항, 제36조 제1항 (판결 참조조문)
- 민법 제2조, 제103조, 제750조, 제751조 (판결 참조조문)
- 국가배상법 제2조 제1항 (판결 참조조문)
- 초·중등교육법 제6조, 제7조, 제47조 제2항, 제63조 (판결 참조조문)
- 초·중등교육법 시행령 제77조 제2항, 제84조 제2항 (판결 참조조문)
- 대법원 2010. 4. 22. 선고 2008다38288 판결(손해배상(기))
관련 판례
[1] 헌법상의 기본권은 제1차적으로 개인의 자유로운 영역을 공권력의 침해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권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 헌법의 기본적인 결단인 객관적인 가치질서를 구체화한 것으로서, 사법(私法)을 포함한 모든 법 영역에 그 영향을 미치는 것이므로 사인간의 사적인 법률관계도 헌법상의 기본권 규정에 적합하게 규율되어야 한다. 다만 기본권 규정은 그 성질상 사법관계에 직접 적용될 수 있는 예외적인 것을 제외하고는 사법상의 일반원칙을 규정한 민법 제2조, 제103조, 제750조, 제751조 등의 내용을 형성하고 그 해석 기준이 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