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육비를 정한 적 없으면 안 줘도 처벌받지 않나요 — 민법 제837조와 과거 양육비
이혼 과정에서 양육비를 따로 협의하거나 법원에서 정한 적이 없는 경우, “정한 게 없으니 안 줘도 그만”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이는 사실과 다르다. 대법원은 양육비를 정한 적이 없더라도, 지난 기간의 양육비(이른바 ‘과거 양육비’)를 상대방에게 청구할 수 있다고 본다. 다만 이것이 형사처벌과 직결되는 문제는 아니며, 민사·가사 영역에서 상환 범위를 어떻게 정하는지가 핵심이다.
1. 양육에 관한 사항은 누가, 어떻게 정하나
민법 제837조제1항은 이혼하는 당사자가 자녀 양육에 관한 사항을 협의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같은 조 제2항은 그 협의가 반드시 포함해야 할 사항으로 ①양육자의 결정, ②양육비용의 부담, ③면접교섭권의 행사 여부와 그 방법 세 가지를 명시한다.
문제는 협의가 이루어지지 않거나 협의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다. 이때는 제4항에 따라 가정법원이 “직권으로 또는 당사자의 청구에 따라” 양육에 관한 사항을 결정한다. 즉 당사자가 반드시 먼저 청구해야만 법원이 정하는 구조가 아니다. 가정법원은 이 결정을 할 때 제3항이 정한 사정—자녀의 의사·나이, 부모의 재산상황, 그 밖의 사정—을 참작해야 한다.
협의가 이루어졌더라도 그 내용이 자녀의 복리에 반하는 경우에는 제3항에 따라 가정법원이 보정을 명하거나 직권으로 양육에 필요한 사항을 정하고, 제5항에 따라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면 부·모·자녀·검사의 청구 또는 직권으로 양육 사항을 변경하거나 다른 적당한 처분을 할 수도 있다. 다만 제6항은 이렇게 정해지거나 변경되는 것은 양육에 관한 사항일 뿐, 부모의 권리의무 자체를 바꾸는 것은 아니라고 선을 긋는다.
2. 조문에는 없는 ‘과거 양육비’, 어떻게 인정됐나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있다. 민법 제837조 조문 어디에도 ‘과거 양육비’라는 말은 등장하지 않는다. 정하지 않았던 지난 기간의 양육비를 상환받을 수 있다는 법리는 조문 자체가 아니라, 대법원 1994. 5. 13. 자 92스21 전원합의체 결정이 세운 것이다.
이 결정 이전의 대법원 판례들은 대체로 “협의나 심판으로 정해지기 전의 과거 양육비는 청구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92스21 전원합의체는 이 종전 판례들을 변경하면서 다음과 같은 법리를 제시했다.
부모의 자녀양육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는 것이므로, 과거의 양육비에 대하여도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되는 경우에는 그 비용의 상환을 청구할 수 있다.
즉 이 의무는 누가 친권자인지, 누가 현실로 양육하고 있는지와 무관하게 친자관계의 본질에서 당연히 나오는 것이고, 자녀가 태어난 순간부터 발생한다. 그러니 한쪽 부모가 혼자 양육해왔다면, 그동안 상대방이 부담했어야 할 몫을 나중에라도 청구할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전원합의체 결정은 이 청구가 항상 인정되는 것은 아니라고도 분명히 했다. 다음과 같은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상환 청구가 제외될 수 있다.
- 혼자 양육한 것이 양육자의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이나 동기에서 비롯된 경우
- 그 양육이 자녀의 이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
- 양육비를 상대방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오히려 형평에 어긋나는 경우
이런 특별한 사정이 없고, 상대방이 분담함이 상당하다고 인정될 때 비로소 상환 청구가 가능하다. 이 법리는 이후 대법원 2011. 7. 29. 선고 2008스67 판결에서도 그대로 재확인됐다.
참고로 92스21 결정에는 4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반대의견은 “협의 요청이나 심판청구 전에 지출한 양육비는 법원 심판으로 부담을 명할 수 없고, 이는 성질상 민사소송 사항”이라는 입장이었다. 이는 다수의견이 아니라 소수의견이므로, 실제 결정의 결론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 과거분과 장래분을 함께 가정법원 심판으로 정할 수 있다는 근거는 다수의견을 뒷받침한 보충의견이 상세히 밝히고 있다.
3. 청구할 수 있다고 전부 받는 것은 아니다
92스21 결정이 강조하는 또 하나의 포인트는, 과거 양육비 전부를 그대로 받아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한쪽의 양육자가 양육비를 청구하기 이전의 과거의 양육비 모두를 상대방에게 부담시키게 되면 상대방은 예상하지 못하였던 양육비를 일시에 부담하게 되어 지나치고 가혹하며 신의성실의 원칙이나 형평의 원칙에 어긋날 수도 있다.
그래서 과거분은 반드시 이행청구 이후의 양육비와 동일한 기준으로 정할 필요가 없고, 법원이 여러 사정을 고려해 분담 범위를 재량으로 정한다. 92스21과 2008스67이 공통으로 제시하는 고려 사정은 다음과 같다.
- 한쪽이 자녀를 양육하게 된 경위와 그에 소요된 비용의 액수
- 상대방이 부양의무를 인식했는지 여부와 그 시기
- 지출된 비용이 통상의 생활비인지, 아니면 치료비 등 이례적이고 불가피한 특별 비용인지
- 당사자들의 재산 상황과 경제적 능력
- 부담의 형평성
92스21 사건에서 원심은 양육비를 월 25만 원으로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그중 약 3분의 1인 월 8만 원의 분담을 명했는데, 이는 해당 사건에 국한된 금액이지 일반적인 분담 비율 기준이 아니다.
4. 소멸시효는 어떻게 되나 — “10년 지나면 끝”이 아니다
과거 양육비와 관련해 자주 나오는 질문이 소멸시효다. 2008스67 사건의 원심은 “심판을 청구한 날로부터 역산해 10년이 지난 부분의 양육비청구권은 시효로 소멸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를 파기했다.
대법원이 제시한 법리는 이렇다. 양육비를 지급받을 권리는 처음에는 친족관계를 바탕으로 한 추상적인 법적 지위에 불과하고,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으로 그 내용이 구체적으로 정해져야 비로소 독립한 재산적 권리로서의 지급청구권이 된다. 그렇다면 협의나 심판으로 구체적인 지급청구권이 성립하기 전에는, 과거 양육비에 관한 권리를 “양육자가 행사할 수 있는 재산권”이라고 볼 수 없고, 따라서 소멸시효가 진행할 여지 자체가 없다.
2008스67 사건에서는 구체적인 양육비청구권이 성립했다고 볼 자료가 기록상 없었는데도 원심이 10년 경과를 이유로 청구를 배척한 것이 법리오해로 지적됐다. 다만 이는 구체적 청구권이 아직 성립하지 않은 경우의 이야기다. 협의나 심판으로 구체적 청구권이 일단 성립한 뒤에는 그 권리에 소멸시효가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대해서는 이 판결이 직접 다루지 않았으므로, “과거 양육비는 시효가 없다”는 식으로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5. 정리 — 질문에 대한 답
“양육비를 정한 적이 없으면 안 줘도 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안 준다고 해서 이 자체가 형사처벌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지만, 민사·가사 절차를 통해 지난 기간의 양육비를 상환청구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핵심을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 양육 사항은 당사자 협의가 원칙이고, 협의가 안 되면 가정법원이 직권으로도 정할 수 있다(제837조제1항·제4항).
- 조문에 ‘과거 양육비’라는 말은 없지만, 92스21 전원합의체는 자녀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는 부모의 양육의무를 근거로 과거분의 상환청구를 인정했다.
- 다만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청구가 제외될 수 있고, 청구가 인정되더라도 법원이 여러 사정을 참작해 분담 범위를 재량으로 정하므로 전액이 그대로 인정되는 것은 아니다.
- 구체적인 지급청구권으로 성립하기 전의 과거 양육비 권리는 재산권으로 보지 않아 소멸시효가 진행하지 않는다(2008스67). 다만 구체적 청구권 성립 이후의 시효까지 단정할 근거는 아니다.
- 양육 사항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면 가정법원이 추후에도 변경하거나 다른 처분을 할 수 있다(제837조제5항).
참고 법령·판례
- 민법 제837조(이혼과 자의 양육책임) 제1항~제6항
- 민법 제913조(보호, 교양의 권리의무)
- 대법원 1994. 5. 13. 자 92스21 전원합의체 결정
- 대법원 2011. 7. 29. 선고 2008스67 판결
관련 판례
[다수의견] 가. 어떠한 사정으로 인하여 부모 중 어느 한 쪽만이 자녀를 양육하게 된 경우에, 그와 같은 일방에 의한 양육이 그 양육자의 일방적이고 이기적인 목적이나 동기에서 비롯한 것이라거나 자녀의 이익을 위하여 도움이 되지 아니하거나 그 양육비를 상대방에게 부담시키는 것이 오히려 형평에 어긋나게 되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양육하는 일방은 상대방에 대하여 현재 및 장래에 있어서의 양육비 중 적정 금액의 분담을 청구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부모의 자녀양육의무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자녀의 출생과 동시에 발생하
[1] 양육자가 상대방에 대하여 자녀 양육비의 지급을 구할 권리는 당초에는 기본적으로 친족관계를 바탕으로 하여 인정되는 하나의 추상적인 법적 지위이었던 것이 당사자 사이의 협의 또는 당해 양육비의 내용 등을 재량적·형성적으로 정하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청구권으로 전환됨으로써 비로소 보다 뚜렷하게 독립한 재산적 권리로서의 성질을 가지게 된다. 이와 같이 당사자의 협의 또는 가정법원의 심판에 의하여 구체적인 지급청구권으로서 성립하기 전에는 과거의 양육비에 관한 권리는 양육자가 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는 재산권에 해당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