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수목록에 없던 편지, 왜 유죄 판단의 근거가 될 수 없었나
형사재판에서 중요한 것은 증거의 내용만이 아니다. 그 증거를 어떤 절차로 확보했는지도 먼저 따져야 한다. 공범이 구치소에서 보낸 편지에 불리하게 읽힐 만한 표현이 있더라도, 편지의 압수 과정이 법이 정한 방식과 어긋났다면 법원은 그 편지를 유죄의 근거로 사용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최근 보도된 마약류관리법 위반 혐의 사건이 이 원리를 잘 보여 준다. 1심은 공범이 보낸 편지의 문맥을 유죄 판단의 핵심 근거 가운데 하나로 보았다. 그러나 항소심은 경찰이 주거지를 수색하며 편지를 가져간 뒤 수색증명서에는 증거물이 없었다는 취지로 적고, 압수목록에는 편지를 올리지 않은 절차를 문제 삼았다. 편지와 그 편지에 기초한 수사관 진술 등의 증거능력이 배제되자, 남은 정황만으로는 공소사실이 증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상고가 제기되지 않아 이 판단은 확정됐다.
이 사례의 핵심은 편지 내용의 진실성이나 도덕성이 아니다. 증명력과 증거능력을 구분해야 이해할 수 있다.
증거능력과 증명력은 다른 질문이다
증거능력은 “이 자료를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가”라는 입구의 질문이다. 증명력은 그 입구를 통과한 증거가 “사실을 얼마나 강하게 뒷받침하는가”라는 내용의 질문이다.
편지의 문구가 어떤 사실을 가리키는 듯하다는 평가는 증명력의 문제다. 하지만 압수 절차가 위법해 증거능력이 부정되면, 법원은 그 문구가 얼마나 강해 보이는지를 본격적으로 평가할 단계에 나아갈 수 없다. 1심과 항소심의 결론이 달라진 지점도 여기에 있다. 하나는 편지의 내용을, 다른 하나는 편지가 법정에 들어온 경로를 먼저 본 것이다.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는 “적법한 절차에 따르지 아니하고 수집한 증거는 증거로 할 수 없다”고 정한다. 이 규정은 실체적 진실을 찾는 일과 별개로 절차의 통제를 요구한다. 수사기관의 절차 준수가 사소한 형식이 아니라 기본권 보장과 재판의 신뢰를 위한 조건이라는 뜻이다.
수색증명서와 압수목록은 왜 중요한가
압수·수색에는 서로 맞물리는 기록이 있다. 수색을 했는데 증거물이나 몰취할 물건이 없다면 그 취지의 증명서를 교부해야 하고, 물건을 압수했다면 목록을 작성해 교부해야 한다. 수사기관의 압수·수색에도 이 규정들이 준용된다.
따라서 “가져간 것이 없다”는 수색증명서와 실제로 가져간 물건이 빠진 압수목록이 함께 존재하면, 단순한 문서 정리의 흠으로만 보기 어렵다. 무엇을 확보했는지, 그 물건이 어떤 절차와 범위에서 확보됐는지, 당사자가 이를 확인하고 다툴 기회를 가졌는지를 검증하는 연결고리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다만 모든 압수목록 누락이 언제나 같은 결론으로 이어진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영장의 내용, 물건을 확보한 경위, 임의제출 여부, 기록의 작성·교부 상태, 절차 위반의 정도 등 구체적 사정이 함께 검토된다. 보도된 사례에서도 편지가 영장 범위에 포함됐는지 또는 임의로 제출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알려진 사실은 압수 뒤의 절차 서류가 실제 처리와 어긋났다는 점이다.
원래 증거가 빠지면, 뒤따른 진술도 자동으로 남지 않는다
위법하게 수집한 1차 증거를 바탕으로 얻은 자료는 이른바 2차 증거가 될 수 있다. 예를 들어 위법하게 확보된 편지의 내용을 전제로 한 수사관 진술이 이에 해당할 수 있다. 원래 편지가 배제됐다고 해서 모든 후속 자료가 기계적으로 배제되는 것은 아니지만, 후속 증거가 위법한 1차 증거와 얼마나 연결돼 있는지는 별도로 판단해야 한다.
2007년 전원합의체 판결은 위법수집증거를 원칙적으로 배제하면서, 예외적으로 절차 위반이 적법절차의 실질적 내용을 침해하지 않았고 증거 배제가 형사사법 정의에 반하는 결과를 낳는 경우에는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2차 증거는 절차 위반의 내용과 정도, 보호되는 권리의 침해 정도, 수집 경위, 수사기관의 인식과 의도, 1차 증거와의 인과관계가 희석되거나 단절됐는지 등을 종합해 판단한다.
보도된 사례에서 항소심은 편지뿐 아니라 그 편지에 기초한 수사관 진술 등의 증거능력도 인정하지 않았다. 이는 ‘원본만 빼면 된다’는 방식이 아니라, 위법한 확보 과정의 영향이 후속 증거에 남아 있는지를 살핀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영장 범위의 원칙과는 어떻게 이어지나
최근 선고된 전자정보 관련 판결도 별건 수사 과정에서 발견된 무관 전자정보를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의 적법성을 엄격하게 살폈다. 전자정보 사건의 구체적 법리는 종이 편지의 압수와 그대로 같지 않다. 그럼에도 “수사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확보 경위와 대상의 한계를 건너뛸 수는 없다는 점에서 공통된 맥락이 있다.
형사소송법 제215조 제2항은 사법경찰관의 영장에 따른 압수·수색·검증 대상을 해당 사건과 관계가 있다고 인정할 수 있는 것에 한정한다. 제218조는 소유자·소지자·보관자 등이 임의로 제출한 물건에 관해 영장 없는 압수를 허용한다. 어느 규정이 적용되는지는 실제 확보 경위에 따라 달라지므로, 한 사건의 절차 판단을 다른 사건에 그대로 대입할 수는 없다.
“증거가 있는데 왜 무죄인가”에 대한 답
이 질문은 증거의 존재와 증거로서의 사용 가능성을 같은 것으로 볼 때 생긴다. 편지, 녹음, 전자정보처럼 내용상 의미 있어 보이는 자료라도 적법한 절차로 확보됐는지가 먼저 확인된다.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자료의 내용이 불리해 보인다는 사정만으로 유죄 인정의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보도 사례는 수색증명서와 압수목록이 단순한 행정 서류가 아니라는 점을 보여 준다. 압수의 사실과 범위가 기록으로 남고 확인돼야, 법원도 그 증거가 적법한 경로로 들어왔는지 심사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이 무너지면, 그 증거에서 파생된 후속 자료까지 함께 검토 대상이 된다.
자주 묻는 질문
경찰이 압수목록에 없는 물건을 증거로 낼 수 있나요?
압수목록 누락만으로 모든 사건의 결론을 미리 정할 수는 없다. 다만 압수한 경우 목록 작성·교부를 요구하는 규정은 압수 대상과 절차를 확인하게 하는 장치다. 실제 압수와 기록이 어긋난 경위 및 정도에 따라, 해당 물건의 증거능력이 문제 될 수 있다.
위법하게 수집한 증거로 유죄 판단을 받았다면 언제나 뒤집히나요?
위법수집증거 배제 원칙은 적법한 절차를 따르지 않은 증거를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지만, 실제 판단은 위반의 내용과 정도, 증거와의 인과관계, 다른 독립 증거의 유무 등을 토대로 이뤄진다. 위법한 증거가 있었다는 사정만으로 다른 사건의 결론까지 단정할 수는 없다.
마약 사건에서 공범의 편지는 유죄 증거가 되나요?
편지가 어떤 사실을 뒷받침하는지는 내용, 작성 경위, 다른 증거와의 관계를 살펴야 한다. 그보다 앞서 편지가 적법하게 확보됐는지,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할 수 있는지가 검토된다. 편지라는 형식 자체가 유죄나 무죄를 결정하지는 않는다.
참고 법령
- 형사소송법 제128조, 제129조
- 형사소송법 제215조 제2항, 제218조, 제219조
- 형사소송법 제308조의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