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조서, 부인하면 증거가 안 되는데도 재판에서 쓰이는 이유
결론부터: “증거는 안 되지만 반박용으로는 쓸 수 있다”
경찰(사법경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를 피고인이나 변호인이 법정에서 “그 내용은 사실과 다르다”며 인정하지 않으면, 그 조서는 형사소송법 제312조제3항의 요건을 충족하지 못해 유죄의 증거로 쓸 수 없다. 그런데 실무에서는 바로 이 ‘증거로 못 쓰는’ 조서가 법정에서 다시 등장하는 경우가 있다. 피고인이 법정에서 한 진술과 경찰 조서에 적힌 진술이 서로 다를 때, 그 차이를 드러내 피고인 진술의 신빙성을 흔드는 용도로 쓰이는 것이다.
이 글은 형사소송법 제312조·제316조·제318조의2 조문만 근거로, “증거능력 없는 조서를 반박용으로 쓸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조문이 실제로 정하는 범위만큼만 답한다.
피의자신문조서가 증거가 되는 두 가지 요건
형사소송법 제312조제3항은 다음과 같이 정한다.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된 것으로서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그 피의자였던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때에 한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
조문이 “한하여”라고 못 박은 만큼, 아래 두 요건을 모두 갖춰야 증거로 쓸 수 있다.
- 적법한 절차와 방식에 따라 작성되었을 것
-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 피고인 또는 변호인이 그 내용을 인정할 것
두 요건 중 하나라도 빠지면, 특히 피고인이 “경찰에서 그런 말을 한 적은 있지만 내용이 왜곡됐다” 또는 “그런 진술을 한 적 자체가 없다”며 내용을 인정하지 않으면 이 항으로는 증거능력이 생기지 않는다. 조문은 조서가 ‘첫 번째’ 조서인지, 여러 번째 조서인지를 구분하지 않으므로, ‘첫 피의자신문조서라서 더 유리하다/불리하다’는 식의 구분도 조문상 근거가 없다.
여기서 주의할 점 하나. 피의자신문조서의 요건은 ‘내용 인정’이다. 반면 검증조서(제312조제6항)는 작성자 진술에 따른 ‘성립의 진정함’ 증명이 요건이고,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조서(제312조제4항)는 영상녹화물 등 객관적 방법에 의한 동일성 증명 + 원진술자 신문 기회 + 특신상태 증명이 요건이다. 이 요건들은 서로 다른 조서 유형에 각각 적용되는 것이므로 섞어서 이해하면 안 된다. 예를 들어 조사 과정이 영상녹화되어 있다는 사정만으로 피의자신문조서의 ‘내용 인정’ 요건이 대체되는 것은 아니다.
조서가 아니라 진술서라도 다르지 않다
수사 과정에서 피고인이나 참고인이 직접 쓴 진술서에도 제312조제3항·제4항의 요건이 그대로 준용된다(제312조제5항). 즉 경찰이 받아 적은 조서든, 당사자가 직접 작성한 진술서든, 증거능력을 얻으려면 같은 벽을 넘어야 한다.
증거로 못 쓰는 조서, 그래도 쓸 수 있는 자리 — 제318조의2
형사소송법 제318조의2제1항은 이렇게 정한다.
제312조부터 제316조까지의 규정에 따라 증거로 할 수 없는 서류나 진술이라도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기 위하여 증거로 할 수 있다.
바로 이 조항이 질문의 핵심 답이다. 피고인이 내용을 인정하지 않아 제312조제3항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경찰 조서라도, 피고인 또는 그 밖의 사람이 법정에서 한 진술의 신빙성을 다투는 용도로는 증거로 쓸 수 있다.
다만 이 조항이 허용하는 것은 딱 그만큼이다. “증명력을 다투기 위하여”라는 용도 한정이 조문에 명시되어 있다. 예를 들어 피고인이 법정에서 “그런 일 없다”고 하는데, 경찰 조서에는 다른 내용이 적혀 있다면, 그 조서를 제시해 “법정 진술과 경찰에서 한 말이 다르다”는 점을 드러내 신빙성을 흔드는 데 쓸 수 있다. 그러나 이는 그 조서 자체를 유죄 인정의 증거로 쓰는 것과는 다르다. 조문이 정한 용도를 넘어 “결국 부인한 조서도 증거로 쓰이는 것 아니냐”고 일반화하면 조문의 한정을 지우는 결과가 된다.
이 조항 괄호의 ‘피고인이 아닌 자’ 정의(공소제기 전 피고인을 피의자로 조사했거나 그 조사에 참여한 자 포함)는 “이 조에서”만 적용되는 정의다. 다른 조문에까지 자동으로 확장되지 않는다.
영상녹화물은 반박 증거가 아니라 기억 환기용일 뿐
제318조의2제2항은 제1항에도 불구하고 영상녹화물의 쓰임을 다음으로 한정한다.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의 진술을 내용으로 하는 영상녹화물은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가 진술함에 있어서 기억이 명백하지 아니한 사항에 관하여 기억을 환기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되는 때에 한하여 피고인 또는 피고인이 아닌 자에게 재생하여 시청하게 할 수 있다.
즉 영상녹화물은 “기억이 명백하지 않은 사항에 대해 기억을 환기시킬 필요가 있을 때” 본인에게 재생해 보여주는 용도로만 쓸 수 있다. 제1항이 정한 ‘증명력을 다투는 증거’로도, 조서를 대신하는 증거로도 쓸 수 없다. 영상녹화가 있다고 해서 조서의 증거능력 결함이 치유되거나, 영상녹화물 자체가 증명력 다툼의 증거가 되는 것은 아니다.
조사자가 법정에서 “피고인이 이렇게 말했다”고 증언하는 경우
제316조제1항은 공소제기 전 피고인을 피의자로 조사했거나 그 조사에 참여했던 사람(수사관 등)의 법정 진술이 피고인의 진술을 내용으로 할 때의 요건을 정한다.
피고인이 아닌 자(공소제기 전에 피고인을 피의자로 조사하였거나 그 조사에 참여하였던 자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같다)의 공판준비 또는 공판기일에서의 진술이 피고인의 진술을 그 내용으로 하는 것인 때에는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하에서 행하여졌음이 증명된 때에 한하여 이를 증거로 할 수 있다.
조사자가 법정에 나와 “피의자가 조사받을 때 이런 말을 했다”고 증언해도, 그 진술이 특히 신빙할 수 있는 상태에서 이루어졌음이 증명되어야 한하여 증거로 쓸 수 있다. 조사자가 법정에 증언하면 ‘언제나’ 증거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특신상태 증명이라는 별도 요건을 거쳐야 한다. 이 조문의 괄호 정의 역시 “이 조에서”만 적용된다.
요건을 갖춰도 법원이 ‘반드시’ 써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위 조항들은 모두 “증거로 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이다. “증거로 하여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아니다. 요건을 갖추었다고 해서 법원이 그 자료를 자동으로, 즉시 증거로 채택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무조건’, ‘자동으로’ 증거가 된다는 식의 서술은 조문의 문언과 맞지 않는다.
참고: 조문의 시기별 차이에 유의할 것
위에서 다룬 제312조는 2026년 10월 2일 시행된 현행 조문(법률 제21857호)이다. 이 현행 조문에는 검사가 작성한 피의자신문조서에 관한 항이 없다(제1항·제2항은 삭제됨). 제목도 “사법경찰관의 조서 등”이다.
다만 2027년 12월 31일부터 시행될 예정인 법률 제21241호 기준 제312조 문언은 제목이 “검사 또는 사법경찰관의 조서 등”으로 바뀌고, 검사 작성 피의자신문조서에 관한 제1항, “검사 이외의 수사기관”이 작성한 조서에 관한 제3항이 포함되어 있다. 이 문언은 이 글 작성 시점(2026년 10월) 기준 아직 시행 전이므로 현행 조문처럼 서술해서는 안 된다. 다만 그 법률(제21241호)이 실제로 고치는 조문은 제59조의3과 제215조의2뿐이어서, 2027년 12월에 이 제312조 문언이 그대로 되살아나는 것인지는 이 글의 자료만으로는 단정할 수 없다.
또한 2026년 8월 4일 개정 법률(제21857호) 부칙 제12조제2항은 “이 법 시행 전에 검사가 종전의 규정에 따라 작성한 조서”를 제312조 개정규정에도 불구하고 종전 규정에 따라 증거로 할 수 있게 하는 경과조치를 두고 있다. 이는 검사 작성 조서에 관한 경과조치이며, 사법경찰관이 작성한 조서에 관한 별도의 경과조치는 이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는다. 종전 규정의 구체적 문언도 이 자료만으로는 확인되지 않는다.
이 주제와 관련된 구체적 판례는 이 글의 자료에서 확인되지 않아 다루지 않는다.
요약
- 경찰 작성 피의자신문조서는 적법한 절차·방식과 피고인(변호인)의 내용 인정이라는 두 요건을 모두 갖추어야 유죄 증거로 쓸 수 있다(제312조제3항).
- 내용을 인정하지 않아 증거능력이 없는 조서라도, 법정 진술의 증명력을 다투는 용도로는 증거로 쓸 수 있다(제318조의2제1항). 다만 이 용도를 벗어나 유죄 증거로 쓰이는 것은 아니다.
- 영상녹화물은 기억 환기 목적의 재생 시청 용도로만 쓸 수 있고, 증명력 다툼의 증거나 조서 대체 증거로는 쓸 수 없다(제318조의2제2항).
- 조사자의 법정 증언이 피고인 진술을 내용으로 할 때는 특신상태 증명이 별도로 필요하다(제316조제1항).
- 모든 요건은 “증거로 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일 뿐, 요건 충족이 곧 증거 사용 의무를 뜻하지 않는다.
참고 법령
- 형사소송법 제312조(사법경찰관의 조서 등) 제3항·제5항
- 형사소송법 제316조(전문의 진술) 제1항
- 형사소송법 제318조의2(증명력을 다투기 위한 증거) 제1항·제2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