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훼손과 모욕죄, 합의했을 때 사건이 끝나는 방식이 정말 다를까 — 형사소송법 제327조로 보는 공소기각의 구조
명예훼손으로 고소당한 사람과 모욕죄로 고소당한 사람이 똑같이 “합의서를 썼다”고 해도, 법적으로 그 합의가 사건에 미치는 효과는 서로 다릅니다. 이 차이는 형법이 두 죄를 서로 다른 ‘소추조건’ 위에 올려놓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고, 형사소송법은 그 차이를 공소기각 사유의 서로 다른 호(號)로 나누어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형사소송법과 형법의 현행 조문만을 근거로, 합의가 실제로 어떤 절차를 거쳐 사건 종결로 이어지는지를 정리합니다.
1. 결론부터: 두 죄는 ‘소추조건’이 다르다
형법 제312조는 명예훼손 계열 범죄를 두 그룹으로 나눕니다.
- 제1항: 제308조(사자명예훼손)와 제311조(모욕)의 죄는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다 — 이른바 친고죄.
- 제2항: 제307조(명예훼손)와 제309조(출판물등에 의한 명예훼손)의 죄는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 — 이른바 반의사불벌죄.
즉 모욕죄(제311조)는 애초에 고소가 있어야만 기소될 수 있는 죄이고, 명예훼손죄(제307조)는 고소 없이도 기소될 수 있지만 피해자가 분명히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을 밝히면 기소할 수 없는 죄입니다. 이 출발점의 차이가 합의 이후의 절차적 명칭과 효과를 다르게 만듭니다.
| 구분 | 모욕죄(제311조) · 사자명예훼손(제308조) | 명예훼손(제307조) ·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제309조) |
|---|---|---|
| 형법 제312조상 지위 | 친고죄 (제1항) | 반의사불벌죄 (제2항) |
| 합의 후 취해야 할 행위 | 고소취소 |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 또는 이미 한 처벌 희망 의사표시의 철회 |
| 근거 조문 |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6호 |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7호 |
| 다시 되돌릴 수 있는지 | 취소한 자는 다시 고소 불가 (제232조 제2항) | 철회한 경우, 다시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 불가 (제232조 제3항이 제1항·제2항 준용) |
2. 모욕죄·사자명예훼손 — ‘고소취소’와 제327조 제6호
모욕죄와 사자명예훼손죄는 친고죄이므로, 고소가 있어야 공소 제기가 가능합니다. 합의가 이루어지면 고소인은 고소를 취소합니다. 사건이 이미 공소가 제기되어 법원에 가 있는 상태라면,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6호에 따라 “고소가 있어야 공소를 제기할 수 있는 사건에서 고소가 취소되었을 때”에 해당하여 법원은 판결로써 공소기각의 선고를 하여야 한다고 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법원의 재량이 아니라 의무로 규정되어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이 조문이 말하는 것은 공소기각 판결이며 무죄 판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유무죄 판단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절차가 종료되는 방식입니다.
3. 명예훼손·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 — ‘처벌불원·철회’와 제327조 제7호
제307조의 명예훼손죄와 제309조의 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는 반의사불벌죄입니다. 이 죄는 고소 없이도 수사기관이 인지하여 수사·기소가 진행될 수 있지만, 피해자가 명시적으로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를 표시하면 공소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미 처벌을 원한다는 의사표시(고소를 포함)를 해 둔 상태라면, 합의 이후 그 의사표시를 철회함으로써 같은 효과를 낼 수 있습니다.
공소가 이미 제기되어 있는 상태에서 이런 사정이 생기면,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7호에 따라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지 아니하는 의사표시를 하거나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하였을 때”에 해당하여, 역시 법원은 판결로써 공소기각의 선고를 하여야 합니다.
4. 공통적으로 지켜야 하는 시한과 ‘한 번 쓰면 되돌릴 수 없다’는 원칙
형사소송법 제232조는 고소취소와 처벌불원·철회 모두에 적용되는 시간적 한계와 재반복 금지 원칙을 두고 있습니다.
- 제1항: 고소는 제1심 판결선고 전까지 취소할 수 있습니다. 즉 1심 선고가 난 뒤에는 고소를 취소해도 공소기각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 제2항: 고소를 취소한 자는 다시 고소할 수 없습니다. 합의를 깨고 마음이 바뀌어도 같은 사건으로 다시 고소하는 길은 막혀 있습니다.
- 제3항: 피해자의 명시한 의사에 반하여 공소를 제기할 수 없는 사건에서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철회한 경우에도 제1항과 제2항이 준용됩니다. 즉 명예훼손죄에서 처벌 희망 의사를 철회하는 경우 역시 “제1심 판결선고 전까지”라는 시한과 “철회한 뒤 다시 처벌을 원하는 의사표시를 할 수 없다”는 제약을 그대로 받습니다.
이 제3항의 문언은 ‘철회한 경우’만을 명시하고 있다는 점도 눈여겨볼 부분입니다. 처음부터 아무런 처벌 의사표시 없이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뜻만 밝히는 경우는 문언상 철회가 아니므로, 제232조가 정한 시한·재반복 금지 규정이 그대로 적용되는 조문 구조인지는 이 글이 다루는 조문만으로 단정할 수 없습니다. 실제 사안에서는 처벌 의사표시가 있었는지, 있었다면 언제 어떤 형태로 있었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문언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5. 합의했다고 사건이 ‘자동으로’ 끝나는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법 제327조가 정하는 것은 법원이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합의서 작성 그 자체로 사건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고소취소나 처벌불원·철회라는 법이 정한 소송행위가 수사기관 또는 법원에 전달되고, 공소가 제기된 이후라면 법원이 그에 따라 판결을 선고하는 절차를 거쳐야 함을 의미합니다. 공소제기 전 수사 단계에서 합의가 이루어지는 경우의 처리 방식은 제327조가 직접 규율하는 영역이 아닙니다.
또한 공소기각 판결은 유죄도 무죄도 아닌, 본안 판단 자체를 하지 않고 절차를 종료하는 판결 형식입니다. “합의하면 무죄가 된다”는 표현은 이 조문의 내용과 다릅니다.
6. 자주 묻는 질문
Q. 모욕죄로 고소당했는데 합의서만 쓰면 사건이 끝나나요? 합의서 작성 자체가 아니라, 고소인이 고소를 취소하는 절차가 필요합니다. 공소가 이미 제기된 상태라면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6호에 따라 법원이 공소기각 판결을 선고해야 합니다.
Q. 명예훼손은 고소를 취소하면 되나요? 명예훼손죄(제307조)·출판물에 의한 명예훼손죄(제309조)는 반의사불벌죄이므로, 피해자가 처벌을 원하지 않는다는 의사표시를 하거나, 이미 한 처벌 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하는 방식입니다. 공소제기 후라면 형사소송법 제327조 제7호가 적용됩니다.
Q. 1심 선고가 난 뒤에도 고소를 취소하거나 의사표시를 철회할 수 있나요?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1항에 따라 고소취소는 제1심 판결선고 전까지만 가능합니다. 처벌 희망 의사표시의 철회에도 같은 항이 준용되므로 마찬가지로 시한이 있습니다.
Q. 고소를 취소했다가 다시 고소할 수 있나요?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2항에 따라 고소를 취소한 자는 다시 고소할 수 없습니다. 처벌 희망 의사표시를 철회한 경우에도 제3항에 의해 같은 제한을 받습니다.
참고 법령
- 형사소송법 제232조 제1항~제3항 (고소의 취소)
- 형사소송법 제327조 각 호 외의 부분, 제6호, 제7호 (공소기각의 판결)
- 형법 제312조 제1항, 제2항 (고소와 피해자의 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