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여서 몰래 가져간 거면 사기가 아니라 절도인가요?
결론부터 말하면, 속였다는 사정만으로 사기인지 절도인지 정해지지는 않습니다. 핵심은 속임수 때문에 상대방이 재산을 넘기거나 재산상 불이익을 초래하는 행동을 했는지, 아니면 상대방의 그런 행동 없이 행위자가 재물을 빼앗아 갔는지입니다.
대법원은 이 구별에서 처분행위를 중요하게 봅니다. 처분행위와 처분의사는 형법 제347조에 직접 적힌 표현은 아니고, 사기죄의 성립 범위를 설명하기 위해 판례가 사용해 온 용어입니다.
사기와 절도를 가르는 기준: 상대방의 행위가 있었는가
형법 제347조 제1항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한 경우를 사기로 정합니다.
판례에 따르면 사기죄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흐름을 가집니다.
- 상대방을 속이는 행위가 있고
- 상대방이 그로 인해 착오에 빠지며
- 그 착오를 바탕으로 재산상 손해를 일으키는 행위를 하고
- 그 결과 행위자 또는 제삼자가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얻는 경우입니다.
반면, 상대방의 처분행위 없이 행위자가 재물을 탈취한 경우는 절도와의 구별이 문제 됩니다. 즉, 겉으로는 “속여서 가져갔다”는 표현이 같아도, 재산이 이전된 방식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엇에 서명하는지 몰라도 사기가 될 수 있습니다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은 이른바 ‘서명사취’ 상황을 다뤘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서명사취는 속임수로 상대방이 생각했던 것과 다른 효과를 내는 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게 되는 경우를 가리킵니다.
다수의견은 다음과 같이 보았습니다.
- 상대방이 문서의 구체적 내용이나 법적 효과를 정확히 몰랐더라도,
- 스스로 어떤 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한다는 행위는 인식하고 있었고,
- 그 서명 또는 날인이 문서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를 직접 초래했다면,
사기죄에서 말하는 처분행위와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문서가 실제로 어떤 효력을 갖는지 몰랐으니 상대방의 처분행위가 전혀 없다”라고만 볼 수는 없습니다. 속임수로 잘못 이해한 상태에서 한 서명이나 날인이 재산상 손해를 발생시키는 연결고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단순히 물건을 건넸다고 모두 사기는 아닙니다
상대방이 잠시 물건을 보여 주거나 맡긴 것에 불과하고, 행위자가 그 물건을 그대로 가지고 가 버린 경우처럼 상대방이 점유를 완전히 이전하려는 행동을 하지 않았다고 평가될 수 있는 유형도 있습니다.
판결은 사기와 절도를 구분하는 기준으로, 피해자의 행위에 의해 재산을 취득한 것인지 아니면 피해자의 행위 없이 탈취한 것인지를 설명합니다. 따라서 상대방의 교부나 서명이 있었다는 외형만으로 결론을 낼 수는 없고, 그 행위가 실제로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처분행위였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결과를 몰랐다”는 점의 의미
대법원 다수의견은 처분의사를 인정하려면 상대방이 자기 행위의 모든 결과까지 알 필요는 없다고 보았습니다. 착오에 빠진 사람이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다는 취지입니다.
다만 이는 아무런 한계 없이 적용되는 기준은 아닙니다. 판결은 의사무능력자의 행위나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는 처분행위가 될 수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한 서명 또는 날인이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곧바로 사기죄가 성립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 행위가 재산상 손해를 직접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어야 합니다.
정리
“속여서 몰래 가져갔다”는 상황은 다음처럼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 속임수에 빠진 사람이 재산을 이전하거나 재산상 손해를 일으키는 행동을 했다면: 사기죄의 처분행위가 문제 됩니다.
- 상대방의 처분행위 없이 행위자가 재물을 탈취했다면: 절도죄와의 구별이 문제 됩니다.
- 문서 내용을 몰랐더라도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했고 그 문서로 재산상 손해가 발생했다면: 사기죄의 처분행위가 인정될 수 있습니다.
- 무의식 상태이거나 행위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경우라면: 처분행위로 보기 어렵습니다.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은 원심이 처분행위를 부정하여 무죄로 판단한 부분에 법리오해가 있다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이 직접 유죄나 형을 정한 판결은 아닙니다.
참고한 법령
- 형법 제347조 제1항, 제2항
관련 판례
[1] [다수의견]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한 피기망자의 착오와 행위자 등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최종적 결과를 중간에서 매개·연결하는 한편,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처분행위가 갖는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고려하면, 피기망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행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