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여서 몰래 가져가면 사기일까, 절도일까?
요약 및 결론: 속여서 재산을 가져간 경우 사기인지 절도인지는 **피해자 자신의 행위로 재산이 넘어갔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판례는 이 행위를 '처분행위'라고 부릅니다. 피해자가 속아서 스스로 재물을 넘기거나 서류에 서명·날인하는 등의 행위를 했고, 그 행위로 재산상 손해가 생기고 행위자 등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면 형법 제347조의 사기죄가 될 수 있습니다. 법정형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반대로 피해자의 행위 없이 행위자가 탈취하는 방법으로 재물을 가져갔다면 절도죄 영역입니다. 대법원은 2016도13362 판결에서 이 구분을 기준으로 삼았습니다.
"잠깐 보겠다"며 물건을 넘겨받아 사라진 경우도, "허가에 필요한 서류"라며 도장을 받아 간 경우도 모두 '속여서 몰래' 가져간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법적 평가는 서로 다를 수 있습니다. 형법은 2026. 9. 13. 법률 제21450호로 시행되었고, 법률 제22007호도 2026. 10. 2. 시행을 앞두고 있습니다. 두 개정 모두 제347조 문언은 바꾸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사기와 절도를 가르는 기준은 여전히 조문이 아니라 판례에서 찾아야 합니다.
사기와 절도는 무엇으로 갈리나?
사기와 절도는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있었는지로 갈립니다.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은 처분행위가 두 범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고 밝혔습니다. 사기죄는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해 재산을 취득하는 범죄입니다. 절도죄는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않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범죄입니다.
따라서 속였다는 사실만으로 사기가 되지는 않습니다. 몰래 가져갔다는 사실만으로 절도가 되지도 않습니다. 핵심은 재산이 넘어간 원인이 피해자 자신의 행위인지, 아니면 행위자의 탈취인지입니다.
같은 판결의 대법관 6인 반대의견은 이른바 ‘책략절도’ 사안을 예로 듭니다. 책이나 귀금속을 잠깐 보겠다고 거짓말해 넘겨받은 뒤 그대로 가져간 사안입니다. 반대의견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런 사안에서 물건을 건넨 뒤에도 물건이 여전히 피해자의 점유 아래 있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가져간 행위를 점유 침탈로 판단해 절도죄로 처벌해 왔습니다(대법원 1983. 2. 22. 선고 82도3115 판결, 대법원 1994. 8. 12. 선고 94도1487 판결 등). 피해자가 물건을 건넸다는 겉모습만으로 곧바로 사기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처분행위’는 형법 조문에 적혀 있나?
‘처분행위’와 ‘처분의사’는 형법 조문에 적혀 있지 않고, 판례가 쓰는 용어입니다. 형법 제347조제1항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라고만 정합니다.
대법원은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다음 요소가 모두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이사이에는 순차적인 인과관계도 있어야 합니다. 이는 판례가 세운 구성입니다.
- 행위자의 기망행위
- 피기망자의 착오
- 착오에 따른 처분행위
- 행위자 등의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 취득
처분의사가 있으려면 결과까지 알았어야 하나?
결과까지 알았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2016도13362 판결의 다수의견은 착오에 빠진 피기망자가 “어떤 행위를 한다는 인식이 있으면 충분”하다고 봅니다. 그 행위가 가져오는 결과까지 인식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인식만 있으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피기망자의 작위나 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객관적 요건은 따로 남습니다.
다수의견은 사기죄의 본질에서 근거를 찾습니다. 피기망자가 자기 행위의 결과를 정확히 알았다면 애초에 속지 않은 것입니다. 또 결과 인식을 요구하면, 교묘한 수법으로 피해자를 깊이 착오에 빠뜨릴수록 처분의사가 부정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다수의견은 이런 결론은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처분행위가 될 수 없는 경우는?
의사무능력자의 행위나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는 처분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2016도13362 판결의 다수의견도 이 한계를 분명히 했습니다. 처분행위는 하자 있는 의사라도 피기망자의 의사에 의한 것이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결과 인식은 필요 없다’는 법리는 피기망자가 자기 행위 자체는 인식하고 했다는 점을 전제로 합니다.
무슨 서류인지 모르고 서명했는데도 사기가 되나?
사기가 될 수 있습니다. 판결은 이런 유형을 “이른바 ‘서명사취‘“라고 부릅니다.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의 다수의견은 두 조건을 제시했습니다.
- 처분행위: 피기망자가 착오 때문에 내심의 의사와 다른 효과를 내는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했고, 그 문서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가 생겼다면 처분행위에 해당합니다.
- 처분의사: 피기망자가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를 몰랐더라도 “어떤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했고, 서명·날인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면 처분의사가 인정됩니다.
따라서 다음 두 문장은 모두 틀립니다.
- “무엇에 서명하는지 몰랐으니 사기가 아니다.”
- “서명·날인을 받아 내기만 하면 사기가 된다.”
사기죄가 되려면 스스로 서명·날인한 행위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하고, 처분문서 내용에 따른 재산상 손해도 생겨야 합니다.
대법원은 실제 사건에서 어떻게 판단했나?
대법원은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환송했습니다. 대법원이 유죄를 선고하거나 형을 정한 것은 아닙니다.
사안의 유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 행위자 측은 토지 매도인인 피해자들에게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라고 속였습니다.
- 그렇게 해서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을 받고 인감증명서를 넘겨받았습니다.
- 그 서류로 피해자 소유 토지에 행위자를 채무자로 하는 근저당권을 제3자에게 설정해 주고 돈을 빌렸습니다.
원심은 피해자들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줄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처분행위가 없다고 보고, 주위적 공소사실을 무죄로 판단했습니다. 대법원 다수의견은 이 판단이 사기죄의 처분행위에 관한 법리를 오해한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피해자들은 다른 서류로 잘못 알고 처분문서에 서명·날인해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행위를 했고, 스스로 서명·날인하는 행위를 인식했습니다. 그러므로 처분행위와 처분의사가 모두 인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판결로 기존 판례는 어떻게 바뀌었나?
처분결과를 인식해야 처분행위가 인정된다고 한 종전 판결들은 “이 판결과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되었습니다. 대상은 대법원 1987. 10. 26. 선고 87도1042 판결, 대법원 1999. 7. 9. 선고 99도1326 판결, 대법원 2011. 4. 14. 선고 2011도769 판결 등입니다. 전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이 판결과 배치되는 범위에서만 변경되었습니다.
반대의견은 무엇이라고 했나?
대법관 6인의 반대의견은 처분결과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반대의견은 사기죄를 ‘자기손상범죄’, 절도죄를 ‘타인손상범죄’로 설명합니다. 그리고 결과를 전혀 모르는 처분행위는 모순이라고 지적합니다.
이 입장에 따르면 서명사취에서는 처분의사와 처분행위가 부정됩니다. 피기망자는 자기 명의 문서를 위조하는 범행에 이용당한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반대의견은 처벌 범위가 넓어질 우려도 제기했습니다. 이런 행위를 처벌하려면 법리를 바꿀 것이 아니라 별도로 입법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이것은 소수의견이며, 판례의 입장은 앞에서 설명한 다수의견입니다.
행위별로 정리하면?
| 어떤 행위 | 적용 조문 | 법정형ㆍ판례상 평가 |
|---|---|---|
| 사람을 속여 피해자가 스스로 재물을 넘기게 함 | 형법 제347조제1항 |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
| 사람을 속여 재산상 이익을 취득함 | 형법 제347조제1항 |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
| 다른 서류로 속여 처분문서에 스스로 서명·날인하게 하고, 그 문서 내용대로 재산상 손해가 생김(이른바 서명사취) | 형법 제347조제1항,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 | 판례상 처분행위·처분의사 인정. 법정형은 제347조제1항과 같음 |
| 같은 방법으로 제삼자가 재물을 교부받거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게 함 | 형법 제347조제2항 | 제1항과 같은 형 |
| 피해자의 행위 없이 행위자가 탈취해 재물을 취득함 | 형법 제329조(절도) | 판례상 사기가 아니라 절도의 영역. 절도죄 법정형은 이 글의 자료 범위 밖 |
| 잠깐 보겠다고 속여 넘겨받은 물건을 그대로 가져감(이른바 책략절도) | 형법 제329조 | 반대의견이 소개한 종래 대법원 판단은 절도죄. 법정형은 이 글의 자료 범위 밖 |
| 의사무능력자나 무의식 상태의 사람이 한 행위를 이용함 | 형법 제347조,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 | 판례상 처분행위가 될 수 없음 |
실제 처벌 수위는 어느 정도인가?
형법 제347조제1항의 법정형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제2항의 경우도 같은 형입니다.
실제 선고형을 보여 주는 통계나 양형기준 수치는 이 글이 근거로 삼은 자료에 없습니다(공표 자료 없음). 2016도13362 판결 자체도 파기환송 판결이어서 선고형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이 사건은 가중처벌 법률 위반으로도 기소되었습니다. 해당 법률은 구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제3조제1항제2호입니다. 그 가중 기준 역시 이 글의 자료 범위 밖입니다.
현행 형법 제347조는 언제 개정된 문언인가?
현행 형법은 법률 제21450호입니다. 2026. 3. 12. 공포되어 2026. 9. 13. 시행되었습니다. 하지만 이 개정이 고친 조문은 제98조, 제98조의2, 제99조, 제100조, 제101조, 제102조, 제104조, 제123조의2이며 제347조는 없습니다.
제347조의 현재 문언은 법률 제21231호(2025. 12. 23. 공포)가 만든 것입니다.
법률 제22007호(2026. 9. 29. 공포)는 2026. 10. 2.부터 시행되므로, 기준일인 2026. 10. 1. 현재 아직 시행 전입니다. 이 개정 뒤에도 제347조 문언은 같습니다.
관련 법령
제347조(사기) ①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관련 판례
[1] [다수의견]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한 피기망자의 착오와 행위자 등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최종적 결과를 중간에서 매개·연결하는 한편,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처분행위가 갖는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고려하면, 피기망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행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라
자주 묻는 질문
물건을 잠깐 보여 달라고 해서 들고 도망가면 사기인가요, 절도인가요?
이 판결의 반대의견에 따르면, 대법원은 이런 이른바 '책략절도' 사안을 절도죄로 처벌해 왔습니다. 물건을 건넨 뒤에도 물건이 여전히 피해자의 점유 아래 있으므로, 가져간 행위를 점유 침탈로 보았다는 것입니다(대법원 82도3115, 94도1487 판결 등). 사기인지 절도인지는 피해자 자신의 처분행위로 재산이 넘어갔는지에 따라 갈립니다.
무슨 서류인지 모르고 도장을 찍었는데 사기 피해로 인정되나요?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의 다수의견에 따르면 인정될 수 있습니다. 내용과 법적 효과를 몰랐더라도 스스로 문서에 서명·날인하는 행위를 인식했고, 그 문서 내용대로 재산상 손해가 생겼다면 처분행위와 처분의사가 인정됩니다. 다만 의사무능력 상태나 무의식 상태에서 한 행위는 처분행위가 될 수 없습니다.
사기죄 처벌은 최대 몇 년인가요?
형법 제347조제1항의 법정형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입니다. 제3자가 재물을 받거나 이익을 얻게 한 경우에도 제2항에 따라 같은 형이 적용됩니다. 실제 선고형 통계는 이 글의 근거 자료에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