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여서 몰래 가져가면 절도일까, 사기일까
요약 및 결론: 형법 제347조가 정한 사기죄는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해야 성립하고, 판례는 그 과정에 피해자 스스로 재산을 넘겨주는 '처분행위'가 있어야 한다고 본다. 이런 처분행위 없이 행위자가 상대를 방심시켜 놓고 몰래 가져간 경우에는 절도죄로 다뤄진다. 대법원 2017년 전원합의체 판결(2016도13362)은 피해자가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를 몰랐더라도 서명·날인 행위 자체를 인식하고 했다면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있다고 판시했고, 사기죄의 법정형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이다(형법 제347조제1항).
물건을 잠깐 보여달라고 속여 건네받은 뒤 그대로 들고 사라지는 경우,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채 서명만 받아 부동산에 담보를 설정하는 경우처럼, 기망이 섞인 재산 범죄에서 '이게 사기냐 절도냐'는 실무에서도 자주 갈린다. ...종래 판례 세 건의 입장을 이 판결과 배치되는 범위에서 변경했다.
‘처분행위’가 조문에 없다는 게 무슨 뜻인가
형법 제347조제1항은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만 정하고 있고, ‘처분행위’나 ‘처분의사’라는 말은 조문 어디에도 없다.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은 사기죄가 성립하려면 행위자의 기망행위, 피기망자의 착오와 그에 따른 처분행위, 행위자 등의 취득이 순차적 인과관계로 이어져야 한다고 판시했는데, 이 중 ‘처분행위’라는 요건은 조문이 아니라 판례가 쌓아 온 해석이다.
처분행위는 사기죄와 절도죄를 가르는 경계선 역할을 한다. 판결문은 이를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이라고 설명한다. 즉 재산이 넘어간 과정에 피해자의 의사에 기초한 행위가 있었다고 평가되면 사기, 그런 평가 없이 행위자가 일방적으로 가져갔다고 평가되면 절도다.
속여서 몰래 가져간 것처럼 보여도 절도로 처벌된 사례가 있나
있다. 판결문은 이른바 ‘책략절도’ 유형을 예로 든다. 책이나 귀금속을 잠깐 보겠다고 거짓말해 건네받은 뒤 그대로 가져가 버리는 경우, 대법원은 피해자가 물건을 잠깐 내준 뒤에도 여전히 피해자의 점유 아래 있는 것으로 보아 이를 가져간 행위를 점유 침탈, 즉 절도죄로 처벌해 왔다(대법원 1983. 2. 22. 선고 82도3115 판결, 대법원 1994. 8. 12. 선고 94도1487 판결 등). 이 경우 피해자에게는 소유권이나 점유를 넘겨줄 처분의사 자체가 없었다고 보는 것이다.
사기죄가 되려면 피해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작위 또는 부작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이나 재산상 이익을 취득했다고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이 평가가 가능하면 처분행위가 인정되어 사기죄이고, 그런 평가 없이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가져갔다고 평가되면 절도죄다. 결국 “속여서”라는 수단이 같아도 피해자의 처분행위가 인정되느냐에 따라 죄명이 갈린다.
서류 내용을 모르고 서명했는데도 사기가 될 수 있나
될 수 있다. 다만 조건이 있다.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의 다수의견은 피기망자가 처분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를 미처 인식하지 못했더라도, “어떤 문서에 스스로 서명 또는 날인함으로써 처분문서에 서명 또는 날인하는 행위에 관한 인식이 있었던 이상” 처분의사가 인정된다고 판시했다. 다수의견은 이런 유형을 “이른바 서명사취”라고 불렀다.
이 사건에서 피고인 등은 토지 소유자인 피해자에게 “토지거래허가 등에 필요한 서류”라고 속여 근저당권설정계약서 등에 서명·날인하게 하고 인감증명서를 받은 다음, 이를 이용해 제3자에게 근저당권을 설정해 주고 돈을 빌렸다. 원심은 피해자에게 그 소유 토지에 근저당권을 설정해 줄 의사가 없었다는 이유만으로 처분행위 자체가 없다고 보아 이 부분을 무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이를 사기죄의 처분행위에 관한 법리오해라고 보아 원심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환송했다.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하거나 형을 정한 것이 아니라, 처분행위 유무를 다시 심리하라고 돌려보낸 것이다.
이 판단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다. 판결문은 “의사무능력자의 행위나 무의식 상태에서 이루어진 행위는 처분행위가 될 수 없다”고 밝혔다. 즉 자신이 서명하는 줄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손을 움직인 경우나 의사능력이 없는 상태에서 이뤄진 행위는 처분행위로 인정되지 않는다. 또한 그 작위·부작위가 “직접 재산상 손해를 초래하는 재산적 처분행위”로 평가되어야 한다는 객관적 요건도 별도로 필요하다. 그러므로 “무엇에 서명하는지 몰랐으니 무조건 사기가 아니다”와 “서명만 받아내면 무조건 사기다”는 둘 다 이 판결의 내용과 맞지 않는다.
이 쟁점에는 대법관 6인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반대의견은 피기망자가 처분결과, 즉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를 인식하지 못했다면 처분의사를 인정할 수 없고, 이런 경우 피기망자는 문서위조 범행에 이용당한 것일 뿐이라고 보았다. 다수의견과 반대의견 모두 하나의 판결에 담긴 의견이지만, 실제 결론과 현재의 판례 법리를 이룬 것은 다수의견이다.
사기죄로 처벌되는 행위는 조문상 어떻게 나뉘나
형법 제347조는 2개 항으로 구성되고 호(號)는 없다. 아래 표는 각 항이 정하는 행위와 법정형을 정리한 것이다.
| 어떤 행위 | 적용 조문 | 법정형 |
|---|---|---|
|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 | 형법 제347조제1항 |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
| 같은 방법으로 제삼자로 하여금 재물의 교부를 받게 하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게 함 | 형법 제347조제2항 | 제1항과 같음(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 |
두 항 모두 법정형이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같다. 자신이 직접 재물이나 이익을 취득한 경우(제1항)와, 자신은 취득하지 않고 제3자가 취득하게 한 경우(제2항)를 나눠 규정하되 처벌 수위는 동일하게 맞춘 구조다.
실제로는 얼마나 처벌받나
사기죄의 법정형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상한이 넓게 열려 있다. 그러나 개별 사건에서 실제로 선고되는 형량이 이 상한에 얼마나 미치지 못하는지에 관한 공표된 통계나 양형기준 수치는 이 글이 근거로 삼은 자료에는 없다. 공표 자료 없음. 법정형과 실제 선고형 사이의 간극을 구체적 수치로 확인하려면 양형위원회의 양형기준집이나 사법연감 등 별도 공표 자료를 확인해야 한다.
관련 법령
제347조(사기) ① 사람을 기망하여 재물의 교부를 받거나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한 자는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관련 판례
[1] [다수의견] 사기죄에서 처분행위는 행위자의 기망행위에 의한 피기망자의 착오와 행위자 등의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의 취득이라는 최종적 결과를 중간에서 매개·연결하는 한편, 착오에 빠진 피해자의 행위를 이용하여 재산을 취득하는 것을 본질적 특성으로 하는 사기죄와 피해자의 행위에 의하지 아니하고 행위자가 탈취의 방법으로 재물을 취득하는 절도죄를 구분하는 역할을 한다. 처분행위가 갖는 이러한 역할과 기능을 고려하면, 피기망자의 의사에 기초한 어떤 행위를 통해 행위자 등이 재물 또는 재산상의 이익을 취득하였다고 평가할 수 있는 경우라
자주 묻는 질문
속여서 물건을 잠깐 빌리는 척하고 그대로 가져가면 사기인가요, 절도인가요?
그 행위로 피해자가 재산을 넘겨준다는 처분행위가 있었다고 평가되지 않는다면 절도죄로 의율된다. 판례는 물건을 잠깐 보겠다고 속여 건네받은 뒤 그대로 가져가는 '책략절도'의 경우 피해자의 점유가 여전히 남아 있다고 보아 절도로 처벌해 왔다(대법원 1983. 2. 22. 선고 82도3115 판결 등).
계약서 내용을 제대로 안 읽고 서명했는데 사기 피해자가 될 수 있나요?
될 수 있다. 대법원 2016도13362 판결은 서명 또는 날인 행위 자체에 관한 인식만 있으면 되고, 문서의 구체적 내용과 법적 효과까지 알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다만 그 서명으로 실제 재산상 손해가 초래되었어야 하고, 의사능력 없이 이뤄진 행위는 처분행위에서 제외된다.
사기죄는 벌금형만으로 끝날 수도 있나요?
형법 제347조제1항은 "20년 이하의 징역 또는 5천만원 이하의 벌금"으로 정해 징역형과 벌금형을 선택적으로 규정하고 있어, 벌금형만 선고되는 것도 조문상 가능한 구조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경우에 벌금형이 선택되는지에 관한 통계나 기준은 이 글의 자료 범위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