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에서 진술했는데 법정에서 또 말해야 하나요? —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가 정한 피해자 진술권
결론부터: 수사기관 진술과 법정 진술은 다른 절차다
“경찰에서 이미 다 말했는데, 재판에서 또 말할 수 있나요?”라는 질문은 전제가 섞여 있다. 수사기관에서의 진술(고소장, 참고인 진술)과 법정에서의 증인신문은 법적으로 별개의 절차다.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피해자등의 진술권)는 범죄 피해자가 법정에서 증인으로서 진술할 기회를 어떻게 보장하는지를 정한 조문이다. 경찰 조사에서 말한 적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법정 진술 기회를 막는 것은 아니다. 다만 조문은 일정한 조건 아래 예외를 두고 있어서, 그 구조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
제294조의2 제1항 — “신청이 있는 때”에만 의무가 생긴다
조문은 이렇게 되어 있다.
①법원은 범죄로 인한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ㆍ직계친족ㆍ형제자매를 포함한다. 이하 이 조에서 “피해자등”이라 한다)의 신청이 있는 때에는 그 피해자등을 증인으로 신문하여야 한다. 다만,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
여기서 핵심은 **“신청이 있는 때”**라는 요건이다. 법원이 피해자를 알아서 찾아 증인으로 부르는 구조가 아니다. 피해자 또는 그 법정대리인이 증인신문을 신청해야 비로소 법원에게 “신문하여야 한다”는 의무가 발생한다. 신청이 없으면 이 조항에 따른 의무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
피해자가 사망한 경우에는 배우자·직계친족·형제자매도 “피해자등”에 포함되어 신청할 수 있다. 다만 이 “피해자등”이라는 정의는 “이하 이 조에서”라고 명시되어 있어 제294조의2 안에서만 적용되는 개념이고, 뒤에 나오는 제294조의3의 주체(“범죄로 인한 피해자”)와는 범위가 다르다.
단서 — 법원이 신문하지 않아도 되는 두 경우
제1항 단서는 “다음 각 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는 경우에는 그러하지 아니하다”라고 하여 예외를 두고 있다. 조문 구조상 호는 제1호부터 제3호까지 있지만, 제1호는 2007년 개정으로 “삭제”되었다. 따라서 현재 실제로 작동하는 예외 사유는 두 가지뿐이다.
- 제2호: 피해자등이 이미 당해 사건에 관하여 공판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하여 다시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
- 제3호: 피해자등의 진술로 인하여 공판절차가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가 있는 경우
여기서 주의할 점이 있다. 이 예외는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는지 여부가 아니라, “공판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했는지를 기준으로 한다. 즉 수사기관에서 참고인으로 진술한 사실만으로는 이 예외에 해당하지 않는다. 조문이 말하는 것은 “당해 사건에 관하여 공판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하여 다시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이지, 수사 단계 진술을 이유로 법정 신문을 생략하는 규정이 아니다. 예외 사유도 이 두 가지로 한정되어 있으며, 법원이 임의로 다른 사유를 들어 신문을 거부할 수 있는 구조는 아니다.
제294조의2 제2항 — 처벌 의견을 말할 기회는 “신문하는 경우에” 주어진다
②법원은 제1항에 따라 피해자등을 신문하는 경우 피해의 정도 및 결과,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 그 밖에 당해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처벌 의견을 말할 기회는 증인신문과 무관하게 별도로 존재하는 발언권이 아니다. 제1항에 따라 피해자등을 증인으로 신문하는 경우에 한해, 법원은 그 신문 과정에서 피해의 정도 및 결과, 피고인의 처벌에 관한 의견, 그 밖에 당해 사건에 관한 의견을 진술할 기회를 주어야 한다. 즉 증인신문 신청 → 신문 실시 → 그 안에서 처벌 의견 진술이라는 순서로 연결되어 있는 구조다.
제294조의2 제3항·제4항 — 신청인이 여럿이거나 불출석한 경우
같은 범죄사실에 대해 신청인이 여러 명이면 어떻게 될까.
③법원은 동일한 범죄사실에서 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신청인이 여러 명인 경우에는 진술할 자의 수를 제한할 수 있다.
이것은 “제한할 수 있다”는 재량 규정이다. 법원이 반드시 제한해야 하는 것은 아니고, 사건 상황에 따라 제한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대로 신청을 해놓고 출석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
④제1항의 규정에 의한 신청인이 출석통지를 받고도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하지 아니한 때에는 그 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본다.
이것은 “본다”는 간주 규정이다. 다만 조건이 붙어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단순히 출석하지 않았다는 사실만으로 자동으로 철회 처리되는 것이 아니라, “출석통지를 받고도 정당한 이유없이” 출석하지 않은 경우에 한해 철회한 것으로 간주된다. 정당한 이유가 있는 불출석이라면 이 간주 규정이 그대로 적용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제294조의3 — 비공개 심리는 법원의 재량 결정 사항
법정에서 처벌 의견을 말하고 싶지만 사생활 노출이 걱정되는 경우를 위한 규정도 있다.
①법원은 범죄로 인한 피해자를 증인으로 신문하는 경우 당해 피해자ㆍ법정대리인 또는 검사의 신청에 따라 피해자의 사생활의 비밀이나 신변보호를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때에는 결정으로 심리를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 ②제1항의 결정은 이유를 붙여 고지한다. ③법원은 제1항의 결정을 한 경우에도 적당하다고 인정되는 자의 재정(在廷)을 허가할 수 있다.
이 조항의 주체는 제294조의2와 달리 “범죄로 인한 피해자”이며, 신청권자는 피해자·법정대리인 또는 검사다. 여기서도 핵심은 “공개하지 아니할 수 있다”는 재량 문구다. 신청만 한다고 당연히 비공개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법원이 사생활의 비밀이나 신변보호를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해야 비공개 결정이 내려진다. 비공개 결정을 하더라도 법원이 적당하다고 인정하는 사람의 재정(법정에 남아 있는 것)은 허가할 수 있어, 완전한 차단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조문 체계 요약 — 어미가 항마다 다르다는 점
제294조의2는 항 4개, 호 3개(제1호는 삭제되어 실질적으로는 제2호·제3호 두 개)로 구성되어 있고, 각 항의 어미가 서로 다르다.
- 제1항: “신문하여야 한다” — 의무 (신청이 있을 때)
- 제2항: 의견 진술 기회를 “주어야 한다” — 의무 (제1항에 따라 신문하는 경우)
- 제3항: 진술할 자의 수를 “제한할 수 있다” — 재량
- 제4항: 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본다” — 간주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한 경우)
제294조의3은 항 3개로 구성되어 있고 호는 없다. 제1항과 제3항이 “할 수 있다”는 재량, 제2항은 이유를 붙여 고지한다는 절차 규정이다.
조문의 연혁 — 이번 개정으로 바뀐 조문은 아니다
현재 형사소송법은 2026년 8월 4일 법률 제21857호로 일부개정되어 2026년 10월 2일부터 시행 중이다. 다만 제294조의2와 제294조의3의 현재 문언을 만든 것은 이 개정이 아니라 2007년 6월 1일 법률 제8496호다. 법률 제21857호가 함께 고친 조문 목록에는 제294조의2·제294조의3이 포함되어 있지 않으며, 이 법률 부칙이 정한 적용례(제2조부터 제11조까지)와 경과조치(제12조부터 제14조까지)에도 두 조문에 관한 내용은 없다. 2027년 12월 31일 시행 예정인 법률 제21241호 개정에서도 이 두 조문의 문언은 동일하게 유지된다(이 개정이 고치는 조문은 제59조의3과 제215조의2다).
정리
- 법정 증인신문은 피해자등의 신청이 있어야 법원의 의무가 생긴다. 법원이 자동으로 불러주는 절차가 아니다.
- 신문을 하지 않아도 되는 예외는 “공판절차에서 충분히 진술하여 다시 진술할 필요가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와 “진술로 공판절차가 현저하게 지연될 우려가 있는 경우” 두 가지뿐이다. 경찰 조사에서 진술했다는 사실 자체는 이 예외의 기준이 아니다.
- 처벌 의견 진술 기회는 증인신문이 실시되는 경우에 그 안에서 주어진다.
- 신청인이 여럿이면 법원이 인원을 제한할 수 있고(재량), 정당한 이유 없이 불출석하면 신청을 철회한 것으로 본다(간주).
- 비공개 심리는 신청이 있어도 법원이 필요성을 인정해야 결정되는 재량 사항이다.
이 조문과 관련해 구체적으로 적용된 판례는 이 글에서 확인하지 않았다. 개별 사건에서 신청 방법이나 법원의 판단은 사건 기록과 재판부의 소송지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참고 법령
- 형사소송법 제294조의2(피해자등의 진술권) 제1항~제4항
- 형사소송법 제294조의3(피해자 진술의 비공개) 제1항~제3항
- 형사소송법 부칙 <법률 제21857호, 2026. 8. 4.> 제1조
- 형사소송법 부칙 <법률 제21241호, 2025. 12. 30.> 제1조